[사회] '호적 둘' 서류조작, 미아를 고아로 만들기도…해외입양인 인권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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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입양인 부부 신승엽(54·Seung-Yup Flikweert)씨, 김미애(55·Alice Yung Hee Delhaas)씨의 가족 사진. 사진 신서빈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네덜란드에서 만나 가정을 이룬 네덜란드 입양인 부부 신승엽(54)씨와 김미애(55)씨. 이들은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친부모 찾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들 신서빈(26)씨는 현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네덜란드로의 해외 입양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부부는 3년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신청했다. 입양 서류가 조작된 정황이 있어 ‘정체성을 알 권리’가 침해됐다는 이유에서다. 남편 신씨는 호적이 2개인 문제가 있었다. 1975년 입양 당시 이미 가족 등록이 되어 있었음에도, 입양 기관이 해외 입양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그를 ‘고아’로 기재한 새 호적을 만들었다. 발견 장소 또한 정확하지 않았다. 입양알선기관의 주소지인 ‘도봉구 쌍문동’으로 기재됐다.

네덜란드 입양인 부부 신승엽(54·Seung-Yup Flikweert)씨, 김미애(55·Alice Yung Hee Delhaas)씨의 1997년 웨딩 사진. 사진 신서빈
아내 김씨는 ‘친가족 찾기’ 절차가 없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고로 인해 미아가 된 아동이 고아로 둔갑해 해외 입양되는 일을 막기 위해선 부양 의무자 확인 공고를 내고 친가족을 찾는 과정이 의무인데, 김씨의 경우 그런 절차가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며 잠시 아이를 지인에게 맡겼다. 그 후 김씨는 3세 때인 1973년 네덜란드로 입양됐고, 그사이 기록은 전무하다. 생일조차 입양 기관에 의해 임의로 기재됐다. 딸의 행방을 몰랐던 어머니는 아이가 사망한 줄로만 알고 살다가 2006년이 되어서야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입양 사실을 알게 돼 친딸과 재회할 수 있었다.

26일 오후 10시 30분쯤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프랑스 입양인 김유리씨가 박선영 위원장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실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이아미 기자
진실화해위는 26일 오전 10시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 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제102차 위원회에서 신청자 56명에 대해 ‘진실 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신씨 부부를 비롯해 1960∼1990년대 덴마크‧미국‧스웨덴 등 해외 입양인 367명이 지난 2022년 신청한 조사 결과 중 일부다. 2년 7개월간의 조사 끝에 4명 중 1명 정도만 국가로부터의 인권침해를 인정받은 셈이다. 위원회에서 총 98명 중 56명은 인정, 42명은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보류 결정됐다. 나머지 사례에 대해선 조사가 종료되는 5월 전에 결과가 순차 발표될 예정이다.
진실화해위는 해외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유형으로 신씨 사례와 비슷한 ‘허위 기아발견신고 등 기록 조작’, 김씨 사례와 비슷한 ‘요식행위인 부양의무자 확인공고’를 지적했다. 이 외에도 적법한 동의를 갖추지 못한 입양 절차 진행, 양부모 자격 부실 심사 등이 거론됐다.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서는 국가의 공식 사과, 입양인의 실태 조사와 후속대책 마련, 피해자 구제 조치와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비준 등을 권고했다.

'한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라는 문구와 함께 덴마크 입양 센터의 1984년 연례보고서에 실린 사진. 진실화해위는 ″양부모의 수요에 맞춘 입양아 공급으로 인해 수십 명의 아동이 항공기 좌석 벨트에 묶인 채 장시간 비행을 견뎌야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진실화해위
신씨 부부는 아직 진실화해위의 결과 통지를 받아보지 못한 상태다. 이들을 대신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들 신서빈씨는 “진실화해위의 조사 방식은 신청인 중심으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발생한 피해인 만큼, 해외 입양인 약 20만 명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청인들은 언어 및 문화 장벽, 정보 부족 등의 문제로 인해 개별적으로 정보 공개 청구나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입양 기관도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인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신청인 사례 발표자로 연단에 선 김유리씨는 1984년 프랑스로 입양된 후 소아성애자인 양부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시골로 입양된 후 고립된 채 자살한 한국 입양인들에게 이 순간을 바친다”며 “국가의 해외 입양 정책이 만든 피해자들의 평생 트라우마를 다시 평가하고, 권고 사항을 철저히 검토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전날 위원회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덴마크 입양인 한분영씨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례가 많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서류 부족을 이유로 입양인을 또다시 피해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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