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헬기론 못잡는 뒷불, 주불만큼 무섭다" 전문가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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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산불 전문가 진단

경북 5개 시·군 산불 주불이 잡힌 28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포산리 일대 야산이 산불로 인해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다. [뉴시스]
“40년 경력에 이런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27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남성현 전 산림청장(국민대 석좌교수)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국립산림과학원장, 남부지방산림청장을 거쳐 산림청장을 지낸 남 전 청장은 한국의 대표적 산림 관리 전문가다. 그런 그도 이번 경북 지역을 덮친 산불은 ‘전대미문의 사태’라고 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산불은 산만 타는 게 아니라 도시, 마을이 타고 국가적 재난”이라며 “국방 태세를 늘 갖추는 것처럼 유비무환의 산불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임도(林道) 확충을 강조했다. 2022년 경북 울진 금강송면 화재 때도 2021년 임도를 설치한 덕에 진화·소방 차량이 계속해서 오다니며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9박 10일간 탔어도 8만 그루의 소나무는 그대로 보존됐다”고 말했다.

남성현 전 산림청장
- 진화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
- “역대 최악의 산불이라는 2000년 강원도 산불보다 더 힘들다.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강풍이다. 2000년 당시엔 불길 확산 속도가 시간당 4.4㎞였는데 이번엔 8.2㎞다. 역대 산불 중 가장 빨랐다. 둘째는 풍향이다. ‘도깨비불’처럼 시시각각 바뀐다. 40년 경력에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 셋째는 면적이다. 20년 전과 비교해 임목 면적이 3배 남짓 늘면서 화마를 키운 점도 있다.”
- 지역적 차이도 있나.
- “경상도는 사유림이 많다. 국유림이면 계획적 관리가 가능한데 사유림은 국가 차원의 관리가 어려워 산불 대비가 충분치 않다. 우리나라의 사유림 비율은 66%로, 국유림이 50% 이상인 임업 선진국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 조기 진압이 왜 어려웠나.
- “강풍이 초속 27m로 불면서 불길을 잡을 틈 없이 번졌다. 화재가 장기화하면서 연무가 올라오고 구름 낀 흐린 날이다보니 27일엔 주한미군 지원 헬기도 철수했다. 진화 자원이 더 있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 산불진화차(1톤)보다 물탱크 용량이 3배인 특수산불전용진화차가 확충되어야 한다. 대당 8억원인데, 현재 29대다. 100대는 있어야 한다.”
- 화재에 취약한 소나무숲이 불길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 “산림 면적의 4분의 1이 소나무(16억 그루)다. 그중 직접 심은 나무는 6%에 불과하다. 94%는 솔씨가 날리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장했다. 애초에 소나무가 불쏘시개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했다.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솎아내기와 소나무재선충병 관리를 소홀히 한 탓도 있다. 전염성이 강한 재선충병 감염목들은 보통 1m 크기로 조각내 살충제 처리 후 6개월간 밀봉해두는 훈증 처리를 한다. 그런데 훈증 더미를 방치하면 문제가 된다. 이번 산불이 난 경북 지역은 재선충병이 가장 심한 곳이다보니 훈증 더미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 앞으로 필요한 대책은 뭔가.
- “산불은 대형헬기를 동원한 공중진압과 동시에 지상진압이 이뤄져야 한다. 지상 진압을 위한 임도 확충은 필수다. 대형헬기는 큰불만 잡는다. 가장 중요한 건 뒷불 정리다. 보통 주불이 잡혀도 뒷불 처리가 안 되면 불길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낙엽이 평균 40㎝, 최대 2m가 쌓일 정도여서 더 그럴 가능성이 크다. 임도가 있으면 헬기가 물을 뿌린 후 진화차량이 계속 물을 뿌리며 잔불 끄기를 할 수 있다.”
그는 산림청장 재직 당시인 2023년 3월 하동·합천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때의 경험을 공유했다. “같은 경남이라도 진화율은 임도 유무에서 갈렸다. 합천은 마침 임도 설치가 완공돼 있어 헬기로 1차 진압 후 임도를 통해 진화차량, 전문진화인력이 투입되면서 82%의 진화율을 보였다. 반면 하동 지리산국립공원엔 임도가 없다 보니 차량 진입이 어려웠다. 할 수 없이 탐방로로 진화대원을 투입했다. 보통 대원들은 물이 채워진 15㎏ 정도의 등짐펌프를 메고 가는데, 당시 대원 중 1명이 숨이 찬 나머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임도 유무에 따라 진화율은 5배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 그런데도 우리 임도는 산림 1㏊를 기준으로 독일(54m)·일본(23.5m) 등에 비해 크게 적은 4m에 불과하다.
- “미국·일본 등 임업선진국이 임도 설치를 시작한 건 산림경영·관리 차원에서였다. 그런데 최근 이상기후로 산불이 대형화·일상화하면서 신속한 대처 측면에서도 임도는 필수불가결해졌다. 유엔식량농업기구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도 밀도 비율은 타국 대비 낮은 편이다.”
- 일부 야당과 환경단체에선 산림훼손을 우려한다.
- “임도 설치로 인한 환경훼손과 대형산불 조기 진압 실패로 인한 훼손을 비교해보자. 더욱이 대형산불은 이번처럼 강풍 등 통제 불가 변수가 많다. 단순히 산림훼손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발생량과 손해규모 등 경제적 공익가치 등을 비교하면 후자의 손실이 훨씬 크다. 애초에 임도 설치를 금하는 게 아니라, 재해안전성, 환경성, 타당성을 담보한 임도 설치를 고민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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