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새 단장한 종묘로 155년만 ‘왕의 신주’ 행차…이 가마로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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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한복기술진흥원 원장(한웨이브리미티드 대표)가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공방에서 제작 마무리 단계의 신주가마를 살펴보고 있다. 전민규 기자
국보 ‘종묘 정전’이 5년 간의 보수 정비 공사를 마치고 오는 20일 위용을 드러낸다. 그간 창덕궁 구(舊)선원전에 임시로 모셨던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 49위도 이날 종묘 정전의 신실(신주를 모시는 곳)로 되돌아온다. 조선시대엔 신주를 신실 바깥으로 옮기는 걸 ‘이안(移安)’, 다시 모시는 걸 ‘환안(還安)’이라고 일렀다. 20일 열리는 환안제는 1870년(고종 7년) 이후 155년 만이다. 신주들은 조선왕실의궤에 따라 정밀하게 고증 제작된 가마를 타고 이동하게 된다.
5년 보수 마친 종묘 정전 20일 환안제 #의궤 따라 엄밀 고증한 전통 가마 태워 #조선 왕실 신위 49위 다시 모시는 행사 #"155년 만에 역사적 가치 되살리게 돼" # #
지난 2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전통 가마 제작 공방을 찾았을 때 이강연 가교장(대한민국 가마 전승자)이 가마의 지붕 부분을 손질하느라 땀을 쏟고 있었다. 가마는 벽체, 지붕, 가마채(가마를 받쳐서 드는 막대기)로 구성된다. “가마 외에도 행사에 쓸 기물들이 많은데, 마무리 작업이 촉박해 휴일 없이 일한다”고 했다. 공방 안이 청량한 톱밥 냄새로 가득 찼다.

이강현 대한민국 가마 전승자가 2일 오후 경기도 파주 광탄면의 한 공방에서 이번 종묘 환안제에 쓰일 가마의 지붕 부분을 손질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목재를 깎고 다듬어 가마 몸체를 만드는 건 1단계일 뿐이다. 백골가마(아무 것도 채색 안된 가마)가 완성되면 꼼꼼히 옻칠을 해서 보존력과 광채를 높인다. 지붕 등엔 단청칠도 한다. 다음엔 니금(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가루)으로 장식 문양을 넣는다. 사면에 가림막용으로 내거는 주렴(구슬 등을 꿰어 늘어뜨리는 발)도 따로 제작한다. 이번 가마를 만들 땐 각 공정별로 ‘인간 문화재’가 총출동했다. 옻칠은 박규래 나전칠기장(강원도 무형유산), 단청칠은 이정기 악기장(국가무형유산), 주렴 작업은 박성춘 담양 죽렴장(전남무형유산) 등이 맡았다. 총 5개월이 넘는 작업이다.
환안제에 쓰이는 가마는 총 3종이다. 궁궐 밖에서 신주를 모실 때 사용하는 신연(神輦)과 궁궐 안에서 사용하는 신여(神轝), 그리고 향합·향로를 옮기는 용도의 향정자(香亭子, 혹은 향용정)다. 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여는 사람이 너끈히 탈 수 있는 규모로 지붕까지 씌운 무게가 대략 90㎏에 이른다.

이강현 대한민국 가마 전승자 파주 광탄면의 공방에서 제작 중인 가마 구성품들. 전민규 기자
지붕만 씌우기 직전, 완성 단계에 이른 신연을 이날 고양시 덕양구의 또 다른 공방에서 만났다. 붉은 옻칠을 마치 갑옷처럼 두르고 녹색 비단을 덧댄 주렴이 사방을 둘러가며 곱게 늘어진 모습이다. 네 기둥 부분엔 날아갈 듯한 구름무늬가, 좌석 하단엔 용·호랑이·해태·코끼리 등 상서로운 동물들이 금가루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 지붕을 씌울 때 모서리마다 용머리 장식이 더해진다.
“옻칠할 땐 원주로, 단청칠과 니금할 땐 경주로 보내는 등 각 단계별로 가마를 무진동차량에 태워 이동시켰죠. 이 공방에선 주렴을 걸고 가마 내부에 화문석을 까는 등 마무리 작업을 합니다.”

박현주 한복기술진흥원 원장(한웨이브리미티드 대표)가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공방에서 제작 마무리 단계의 신주가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붕을 올리기 전 신연의 모습이다. 전민규 기자

국보 ‘종묘 정전’의 보수 정비 공사가 5년 만에 완료됨에 따라 오는 20일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종묘 정전으로 다시 모셔오는 ‘환안제’가 열린다. 사진은 이번 환안제에 쓸 가마 가운데 신연(神輦, 궁궐 밖에서 신주를 모실 때 사용하는 가마)이 묘사된 이환안반차도(移還安班次圖). 사진 국가유산청

국보 ‘종묘 정전’의 보수 정비 공사가 5년 만에 완료됨에 따라 오는 20일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종묘 정전으로 다시 모셔오는 ‘환안제’가 열린다. 사진은 이번 환안제에 쓸 가마 가운데 신여(神轝, 궁궐 내에서 신주를 모실 때 사용하는 가마)가 묘사된 이환안반차도(移還安班次圖). 사진 국가유산청
공방에서 만난 박현주(64) 한복기술진흥원장의 설명이다. 문화재학 박사로서 40년간 한복 고증·재현에 앞장 선 박 대표는 2009년부터 종묘와 궁궐 전각 내부 집기를 보수·복원하는 데 참여해왔다. 이번 가마 제작을 총괄하며 각 단계별로 장인들과 작업했을 뿐 아니라 기초에 해당하는 문헌·유물 고증이 그의 몫이었다.
이번 작업은 헌종 대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1835~1836년)와 ‘이환안반차도’를 바탕으로 했다. 기록의 민족답게 가마의 크기와 형태, 재료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만 일부는 명맥이 끊어져 한자어만으론 알 수 없었다. “자적록피(紫的鹿皮)라는 게 뭔지 몰라 한참 헤매는 식이죠. 여러 기록과 문맥을 따져서 ‘자주색으로 염색한 사슴 가죽’이란 걸 밝혀낸 뒤 이렇게 장식 끈으로 재현했습니다.”

국보 ‘종묘 정전’의 보수 정비 공사가 5년 만에 완료됨에 따라 오는 20일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종묘 정전으로 다시 모셔오는 ‘환안제’가 열린다. 사진은 이번 환안제에 쓸 가마 가운데 신연(神輦, 궁궐 밖에서 신주를 모실 때 사용하는 가마)이 제작 중인 모습. 사진 국가유산청

국보 ‘종묘 정전’의 보수 정비 공사가 5년 만에 완료됨에 따라 오는 20일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종묘 정전으로 다시 모셔오는 ‘환안제’가 열린다. 사진은 가마 제작에 참고한 고궁박물관 소장 주렴(구슬 등을 꿰어둔 발로 일종의 장식물). 사진 국가유산청
왕실에서 쓰던 가마는 현전하는 것이 몇 없다. 이번 작업엔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어연(임금의 가마) 1기와 신여 1기, 전주 경기전이 소장한 어연 1기와 향정자 1기를 참고했다. 실제 환안제 행사에는 총 28기의 가마(신연 9기, 신여 10기, 향정자 9기)가 사용된다. 모두 새로 만들기엔 인력·예산이 부족해 신연·신여·향정자 각각 1기씩 만들고 나머지는 적절한 가마를 대여해 쓴다. 새로 제작한 신주가마에는 태조와 두 왕후(신의왕후, 신덕왕후)의 신위가 모셔진다. 박현주 원장은 “155년만의 환안제를 계기로 제작 전통이 끊어질 법했던 신주가마를 재현하고, 이 과정에서 최고 장인들의 손끝을 실감하니 숙제를 끝낸 듯하다”며 감격했다.
정전 보수를 위해 신주를 창덕궁에 모셨던 이안제는 코로나19 와중이던 2021년 약식으로 열렸다. 올해 환안제는 창덕궁에서 고동가제(告同駕祭, 제사의 일종)로 시작해 환안 행렬이 광화문, 세종대로사거리, 종각역을 거쳐 종묘에 이르게 된다. 국가유산청 복원정비과의 최자형 사무관은 “올해가 마침 종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30주년인데 5년 만에 돌아오는 종묘 정전의 가치가 환안제를 통해 널리 공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종묘 정전 재개방을 기념해 24일부터 5월 2일까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야간 공연도 열린다.

국보 ‘종묘 정전’의 보수 정비 공사가 5년 만에 완료됨에 따라 오는 20일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종묘 정전으로 다시 모셔오는 ‘환안제’가 열린다. 사진은 종묘 정전의 신실 모습. 사진 국가유산청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종묘 영녕전에서 종묘대제가 진행되는 모습. 지난 5년간 보수공사로 인해 영녕전에서 진행됐던 종묘대제는 올해부터 다시 정전에서 열리게 된다. 연합뉴스

국보 ‘종묘 정전’의 보수 정비 공사가 5년 만에 완료됨에 따라 오는 20일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종묘 정전으로 다시 모셔오는 ‘환안제’가 열린다. 사진은 수리공사 전 종묘 정전의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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