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홍영리 설치미술 개인전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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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아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홍영리 작가의 개인전,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들〉이 뮤지엄 CICA에서 4월 9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한국과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홍영리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생명의 근원성을 탐구하는 여정을 설치미술로 보여준다. 특히 버려진 셔츠와 폐알루미늄 등의 이질적인 소재를 이용한 작품으로 식물의 뿌리와 인간의 태반이 갖는 동질성을 구조적으로 형상화하여 생명에 대한 경의를 깨닫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우리 존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형상화하다

설치미술, 회화,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CICA갤러리가 주관한 연례 국제공모전에서 발굴한 작가 홍영리의 최근 2년간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중력과 네 개의 바람 사이‘, ’우리가 집을 짓는 법‘, ‘숨, 날아오르다’, ‘새들의 건널목‘, ’어머니‘등의 작품들은 감춰진 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들, 하지만 우리 존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땅속으로 깊이 얽혀 자라나면서 우리에게 산소와 그늘과 꽃과 열매를 주는 나무 뿌리들, 부드러운 피부 속에 숨은 복잡한 혈관과 근육들, 몇 번의 클릭만으로 문 앞으로 배달되는 물건들 뒤에 숨은 농장과 공장, 그리고 유통 라인에 깃든 땀과 노동의 손길들, 자신의 젊음을 가족에게 헌신하고 깊어지는 어머니의 주름 같은 것들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서로 다른 차원의 만남을 작품 속에 담아

소모되고 사라져가는 것들과 새로이 태어나는 것들, 버려지는 것들과 찾아지는 것들, 무너지는 것들과 다시금 지어지는 것들 사이에서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로 시작되는 홍영리의 작품은, 사유가 기도가 되고, 기도는 손의 움직임이 되고, 손의 움직임은 물질의 마음을 읽어, 마침내 형체를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탄생된다. 밀랍과 재를 섞어 양손을 도구 삼아 그린 ‘먼지에 대한 생각들‘, 시시각각 변화하는 한지 위에 놓인 조형물의 그림자를 흑연과 물을 섞어 기록한 ‘숨, 날아오르다’, 재생지 쇼핑백을 손으로 자르고 이어 붙여 만든 조형물 ‘종이로 만든 집‘과 그 ‘종이로 만든 집’을 아크릴로 캔버스에 그려낸 ‘우리가 집을 짓는 방법’ 등 그녀의 작품은 이질적인 것들을 함께 엮어 이룩한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쓰이는 질료와 전혀 다른 재질의 물질을 모아 그려낸 작품 세계는 ‘서로 다른 차원과 서로 다른 시점의 통합’이라 할 만하다. 언뜻 보기에 낯설고 기이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안정감이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험과 모색이 만들어낸 연결 통로로의 초대

특히 지난 3년 동안 작가가 폐 티셔츠를 자르고 잇고 감고 묶어 만든 설치 조형물 ‘중력과 네 개의 바람 사이‘와 붉은 ’어머니‘는 기이하면서도 친근하고, 내장이 튀어나온 듯 섬뜩하면서도 온기 어린 느낌을 전해준다. 작가의 반복적인 노동과 성찰을 통해 다양한 물질들이 하나로 엮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틈새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열린 연결 통로가 되어준다. 지속적인 실험과 모색이 만들어낸 작품을 통해 관객은 관람자의 입장을 넘어 작가가 걸어오는 대화에 살며시 공감하며 ‘우리 존재의 근원’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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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리 작가는 고려대학교에서 설치미술로 미술조형학사를 마쳤고, 현재 캘리포니아 Azusa Pacific University에서 미술조형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서울, 자카르타, 캘리포니아, 미시건 등에서 다수의 그룹전에 작품을 선보였고, 온, 오프라인을 통한 다양한 참여미술 워크샵, 토론회 등을 주도해왔다. 이번 CICA 전시는 본국을 떠난 지 30여 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세계 여러 나라로 이주를 거듭하는 여정에서 발견한 ‘생명의 근원성’, ‘기원의 경이로움’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우리 생명은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집요하게 묻는 그녀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결코 한데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재료들을 작품 하나로 연결한 시도가 독창적이며 이어짐과 엮음을 향한 의지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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