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구글’보다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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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 풋볼은 한국 팬에게 생소한 스포츠지만, 서가은은 최고의 직장마저 그만두고 이 종목에 인생을 걸었다. 전민규 기자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정식종목에는 한국 팬에겐 생소한 종목이 있다. 지난 1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LA 올림픽 세부 종목 351개를 발표했는데, 플래그 풋볼(FLag Football)이라는 생소한 종목이 정식 종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미식축구를 변형한 종목으로, 미국·캐나다 등 북미를 제외하고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다.
미지의 스포츠인 플래그 풋볼에 청춘을 ‘갈아 넣은’ 여성이 있다. 한국 플래그 풋볼 여자 국가대표팀 서가은(28·랩터스)이다. 지난 23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그는 “플래그 풋볼은 스포츠의 ‘블루오션’(경쟁이 적은 유망한 시장)이다. 노력에 따라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단 뜻이다. 플래그 풋볼에서 올림픽 금메달이 나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1997년생 서가은은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고교까지 어린 시절을 건설사 해외주재원인 부친을 따라 말레이시아·태국·스리랑카 등지에서 보냈다. 2015년 말레이시아에서 고교를 마치고 연세대 국제학부에 진학해 비교문학 등을 전공했다. 졸업 후인 2021년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구글에 입사했다. 아시아 지역 유튜브 광고주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지난해 6월 말레이시아 컵 대회에 출전한 서가은. [사진 서가은 인스타그램]
플래그 풋볼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5월이다. 학창 시절 배구·배드민턴·농구·투포환 등 다양한 운동을 섭렵했던 서가은은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플래그 풋볼의 올림픽 진입이 유력하다’는 기사를 접하자 마음 한쪽의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다. 그는 “인터넷에 검색하니 한국에 여성 플래그 풋볼 클럽팀(랩터스)이 있었다. 그 길로 가입하고 훈련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플래그 풋볼의 매력에 빠졌다. 다부진 체격(1m60㎝)에 순간 스피드(40m 5초대)가 강점인 그는 공격수(러닝백)를 맡았다.
열정과 능력을 눈여겨본 클럽팀 코치가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를 권유했다. 덜컥 합격하면서 입문 3개월 만인 지난해 8월 핀란드 세계선수권대회(한국 20위)에 나갔다. 서가은은 결국 지난해 5월 플래그 풋볼에 집중하기 위해 구글을 퇴사했다. 입사 3년 만이다. 그는 “대학생 땐 구글에 입사해 정년퇴직까지 다니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플래그 풋볼을 시작한 이후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새로운 꿈을 따라 과감하게 떠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구글을 퇴사하면서 기념 사진을 남긴 서가은. 그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진 서가은 인스타그램]
‘꿈의 직장도 그만두게 한 플래그 풋볼의 매력’을 묻자, 서가은은 “공을 잡는 순간 동료한테 패스하거나 도움받을 수 없다는 룰이 있다. 혼자 덩치 큰 상대 수비수 5명 사이를 돌파해야 한다. 달리기 시작할 때의 긴장감과 공격에 성공했을 때 짜릿함은 다른 스포츠에선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퇴사 후로는 플래그 풋볼에만 집중한다. 주 6회 훈련으로 성에 안 차 개인훈련까지 한다. 지난겨울엔 훈련 중 상대와 부딪혀 안와골절상을 입고 수술대 위에 올랐다. 지난 1년간 치료비로만 1000만원 가까운 돈을 썼다. 훈련비와 대회 참가비도 자비로 충당한다. 서가은은 “구글을 퇴사한 것도, 퇴직금을 훈련비 등으로 다 쓴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바람이라면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이 빨리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마디 덧붙였다. “일본이 세계 3위다. 우리도 올림픽에서 ‘사고’ 칠 수 있다.”
플래그 풋볼(Flag Football)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아메리칸 풋볼)를 안전하게 변형한 종목이다. 과격한 몸싸움과 태클이 없는 게 미식축구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따라서 헬멧 등의 보호 장비도 없다. 전반적인 규칙은 미식축구와 유사하다. 다만 수비수가 상대 공격수의 옆구리에 달린 플래그(깃발)를 낚아채면 태클을 성공한 것으로 간주한다. 심한 신체 접촉이 일어날 경우 반칙이 주어진다. 한국에선 ‘순한 맛 풋볼’로도 불린다. 공을 든 공격수가 플래그를 상대에게 뺏기지 않고 상대 진영 끝까지 달리면 득점(터치다운, 6점)한다. 필드 골은 없다. 출전 선수 5명. 경기장도 가로 70야드, 세로 30야드로 풋볼 구장의 60~70% 크기다. 다양한 작전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어 ‘필드의 체스’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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