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내 집인데 내 집 아냐"…입주 2년째 '주인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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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강변라온프라이빗 아파트에 사는 김모씨. 낡은 단독주택에 살다 13년 만에 재개발한 새 아파트에 2년 전 입주했지만 아직 ‘문패’를 달지 못하고 있다. 주택 출생신고 격인 등기를 하지 못해서다. 법원 등기 현황에 ‘명의인 없음’으로 나온다.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전용면적은 표시돼 있지만 소유자를 알려주는 ‘갑구’가 비어있다. 주인 없는 집이다.

김씨는 “등기부등본이 없으니 담보 대출을 받지 못하는 데다 전세를 놓고 싶어도 세입자의 전세대출이 막혀 있다”며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어 내 집이 내 집이 아니다”고 말했다.

등기부등본 없는 재개발 아파트
준공 20개월만에 일부만 등기
형식적 규정 문구가 발목잡기도
자치단체 제동 걸면 사업 난항

준공했는데도 등기부등본을 갖지 못하는 것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이전고시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고시는 준공 후 동·호수·면적 등의 새 아파트 소유권을 조합원과 일반분양자에게 넘기는 절차다. 이전고시가 이뤄져야 아파트 출생신고서인 건축물대장이 만들어지고 등기부등본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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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2년 넘게 조합원은 등기가 없어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양주 덕소7구역 재개발 아파트(덕소강변라온프라이빗).

대지지분 빼고 건물만 부분 소유권 이전

이 아파트는 덕소재정비촉진지구 개발계획에 따라 2010년 추진위를 구성하고 재개발을 시작한 덕소7구역이다. 11년 만인 2021년 착공해 2023년 11월 준공했다.

조합은 이전고시를 서둘렀지만 시가 공원 등 정비기반시설 미준공을 이유로 거부했다. 이 구역은 2023년 말 상당수 재개발·재건축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기반시설 완공에 앞서 아파트만 부분 준공했다.

재산권 행사가 막힌 조합원과 일반분양자의 민원이 거세지자 시는 1년 8개월만인 지난 7월 조합원 아파트를 제외하고 일반분양분만 이전고시를 했다. 일부라도 공사 완료 후 즉시 하는 부분 준공인가 고시도 부분 이전고시 직전 뒤늦게 공보에 실었다. 이전고시를 하려면 준공인가 고시가 있어야 한다.

시 관계자는 “조합이 계획한 대로 기반시설이 준공되지 않고 면적 등의 측량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혜리 조합장은 “부분 준공 뒤 부분 이전고시가 가능한데도 시는 ‘100% 준공’을 요구하며 이전고시를 막더니, 이례적으로 일반분양분만 이전고시를 했다”며 “같은 건물 내 서로 옆집인데 어떻게 차별적으로 이전고시를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기반시설 등의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부분 준공된 아파트만 부분 이전고시를 하는 사례는 흔하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4단지(현 개포자이프레지던스)는 4월 근린공원·도서관 등을 제외하고 부분 이전고시를 했다. 2009년 준공한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1단지(현 잠실엘스)는 아파트부터 어린이도서관까지 3차례 이상 순차적으로 부분 이전고시가 이뤄졌다. 인천시 부평구 부평4구역(현 부평역해링턴플레이스)은 3월 대지지분 없이 건물만 부분 이전고시가 됐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건물내역(전용면적)만 표시돼 있고 대지권이 아예 없다.

정비사업을 규정하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은 2003년 제정 때부터 “공사가 전부 완료되기 전이라도 완공된 부분은 준공인가를 받아 대지 또는 건축물별로 분양받을 자에게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전고시는 별도의 처리 기한을 두지 않고 준공 후 ‘지체 없이’ 해야 한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는 “아파트·기반시설 등 모든 공사가 끝나기 전에 부분 준공과 부분 이전고시를 허용하는 것은 주택 공급을 촉진하고 재산권 행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비사업에서 이전고시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관련 법령에 따라 큰 집과 작은 집 두 채를 분양받은 조합원은 작은 집을 3년간 팔지 못하는데 전매제한 기간 산정기준이 이전고시다. 10월 수도권까지 대거 확대된 투기과열지구에서 적용되는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가 끝나는 시점도 이전고시다. 이전고시가 늦어질수록 조합원의 재산권 제약도 길어진다.

정비사업 시행 기간 문구 논란

덕소7구역보다 2년 일찍 재개발을 시작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재정비촉진지구 북아현3구역. 서울에서 5970가구를 지을 예정인 용산구 한남3구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재개발 사업장이다(4763가구 예정). 조합 설립 3년 만에 재개발 사업계획인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으며 속도를 내다가 이후 조합 내홍 등을 겪으며 지지부진해졌다.

사업을 재개해 2023년 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정비계획이 결정된 뒤 조합은 바로 주민 총회를 열어 사업시행계획 변경안을 구청에 접수했다. 주민공람과 구청의 요청에 따른 보완, 교통 등 각종 서울시 심의를 진행했으나 5월 구청은 1년 반 만에 '반려' 통보를 했다. 사업 시행 기간을 적은 문구가 문제가 됐다. 조합이 총회에서 ‘청산 시까지’로 결의하고 사업시행계획서에 ‘청산 시까지(72개월)’로 명시했다가 공람공고문에 ‘72개월’로 적은 것이 총회 결의 내용을 임의로 변경한 중대한 하자라는 것이다.

조합은 “시행 기간에 대해 구청과 협의를 했다”며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 반려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합은 앞으로 총회를 다시 열어 시행 기간 안건을 의결한 후 사업시행계획 변경인가를 다시 접수해야 한다. 재시동을 건 사업이 난항을 겪자 조합 내부 갈등까지 불거져 사업은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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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정비사업 시행 기간은 사업시행계획에 포함돼야 하는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조합이 대략적으로 예상하는 기간으로 준수해야 할 의무는 없다.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층수·임대주택 등과 달리 사업성과 무관하다. 형식적인 표현이 달라졌을 뿐인데 조합은 문구 수정을 위해 사업계획을 다시 짜야 할 상황이다.

인허가 좌지우지하는 기초자치단체

도심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와 국회, 서울시는 팔을 걷어붙이고 법령 개정 등을 통해 규제를 완화하고 인허가를 단축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선 재량권을 내세운 자치단체의 갑질과 트집 잡기로 사업이 발목 잡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재개발·재건축은 세부적으로 50개 정도의 단계를 거치는 복잡하고 지난한 사업이다. 단계마다 인허가권은 대부분 시·군·구와 같은 기초자치단체가 쥐고 있다. 아무리 정부가 길을 열고 서울시가 밀어줘도 기초자치단체에서 제동을 걸면 사업이 순항하기 힘들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공직사회에 주문한 '적극 행정'이 정비사업에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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