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470원대 환율 급한 정부, 국민연금 이어 기업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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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당 원화가치가 1470원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자, 정부가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수출 기업의 외환 상황을 본격적으로 점검하기로 했고,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이 ‘달러빚’(외화채 발행)을 내는 걸 검토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국무총리도 한국은행 총재와 만나 최근 외환시장에 대해 논의했다. 이런 고강도 조치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특히 전례가 없는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은 장기적으로 국민의 노후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기재부 TF 발족하고 수출 기업 들여다본다 

기재부 국제금융국에 외환 수급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인력을 보강할 계획이다. 9일 기재부 관계자는 “수출 기업의 외화 자금 현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TF”라며 “기업들로부터 어떤 자료를 제출받을지 검토 중이며 필요할 경우 인센티브(혜택) 등 제도 개선 논의까지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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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기재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수출 기업의 외화 수급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밝혀왔다. 이번엔 전담 조직까지 꾸리며 대응 강도를 한층 높였다. 정부는 기업들의 환전 흐름과 해외 투자 현황을 정례적으로 점검하며 관리할 계획이다. 정부는 달러당 원화가치 추가 하락(환율 추가 상승) 기대가 커지자 기업들이 달러를 시장에 내놓지 않고 보유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이 위축되고 있으니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의도다.

TF에서는 수출 기업에 다양한 제도적 혜택을 주는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달러 환전에 적극 나서거나 국내 설비 투자를 늘리는 기업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의 정책자금 한도를 늘리고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방안 등이 테이블에 올랐다. 세제 혜택도 거론된다. 일례로 해외 자회사 등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익금 불산입) 비율을 현재 95%에서 100%로 확대하는 식이다.

다만 이런 정부 대책이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조급한 마음에 일종의 창구 지도와 비슷한 조치를 내놓는 모습”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 투자나 원자재 수입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자체적인 판단으로 환전을 미루는 것인데, 이를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외화채 발행...시장 "달러빚 리스크 어쩌나" 

이밖에도 환율을 방어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전방위적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근 복지부는 외화채 발행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기금 재원을 연금보험료, 기금 운용 수익, 적립금, 공단 결산 잉여금으로 제한하고 있어 외화채 발행을 위한 법 개정 검토에 본격 나서는 것이다. ‘무(無)부채 연기금’을 유지해온 국민연금의 채권 발행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외화채 발행은 쉽게 말하면 국민연금이 직접 시장에서 달러로 채권을 발행해 ‘달러빚’을 내는 것이다. 달러빚으로 해외 투자 자금을 직접 조달하면 현물환 시장에서 원화를 팔아 달러를 확보해야 하는 규모가 감소한다. 그만큼 달러 수요가 줄게 돼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외화채 역시 채무로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타격을 받을 여지가 있다. 또 세계 금융 시장의 여건이 악화해 금리가 상승할 경우 국민연금의 상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재정 불확실성이 그만큼 확대된다는 의미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권을 발행하면 결국 그간 내지 않던 이자를 내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채권 발행이 국민 노후를 위한 연금 수익률 극대화란 목표와 모순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다른 해외 연기금의 외화채 발행은 레버리지(빚)를 통해 수익률 극대화에 있지 환율 방어에 있지 않다. 적절한 방법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정부는 증권사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증권사의 해외 투자 상품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 설명 의무 이행 여부, 위험 고지의 적정성, ‘빚투(빚내서 투자)’를 부추기는 마케팅 관행 등을 내년 1월까지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최근 해외 주식·파생상품 투자 열풍이 외화 수요를 키워 환율 변동성을 자극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국무총리도 한은 총재 만나 ‘환율 논의’  

이날 이례적으로 국무총리가 직접 한은 총재를 만나 ‘환율 문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기도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9일 이창용 한은 총재와 만나 “환율과 물가 안정 등 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와 한은의 공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직 총리가 한은 총재와의 간담회 일정을 사전에 공개하고 만난 것은 드문 일로, 이번 만남은 김 총리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두 사람은 환율·물가 동향과 더불어 한은이 최근 발표한 구조개혁 관련 보고서를 주요 의제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정부의 대응에도 외환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날 달러당 원화가치는 5.4원 하락한 1472.3원에 마감하며, 다시 한번 1470원대 아래로 내려갔다.

강인수 교수는 “정부의 환율 대책이 지나치게 단기 대응에 치우치면서 오히려 시장의 쏠림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나 기업이 잘못 판단했다는 식의 접근보다는 한·미 관세 협상이나 대내외 금리 차처럼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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