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손수레 버거에서 장학금까지…20년 고대생 친구 영철아저씨 [삶과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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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암동 고대앞 '영철버거' 사장님이었던 이영철(57)씨의 모습. 중앙포토

고려대학교 명물인 ‘1000원 영철버거’의 대표 이영철씨가 지난 1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7세. 고인은 지난해 7월 검진에서 4기 폐암을 진단받고 투병 생활을 지속해왔다. 이씨의 유족은 14일 “평생을 고생만 했던 고인이 이제라도 마음이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68년 전남 해남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형편 탓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11살이 됐을 무렵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생활비라도 직접 벌기 위해 형과 상경해 중식당·공장·레스토랑·포장마차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이후 1992년엔 막노동판에도 뛰어들었다. 수년간 벽돌을 쌓는 조적공으로 일하며 한 직장에 정착하는 듯했지만, 1998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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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영철버거 가게 앞에 조화가 놓여있다. 김정재 기자

수중에 남은 돈이 2만2000원뿐이었던 2000년, 그는 “식당에서 일해본 경험을 살려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고려대 후문 앞에 손수레를 놓고 버거를 팔기 시작했다. 미국식 핫도그 빵 사이에 고기볶음·양배추·소스를 마구 넣은 이른바 ‘스트리트 버거’였다. 1000원이라는 값싼 가격으로 가난한 학생들의 허기를 채워주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철버거는 고려대 앞 명물로 자리 잡았다. 이씨는 2005년엔 안암동 96번지에 정식으로 매장을 열었다. 이후 사업을 확장해 2007년엔 80여개의 전국 가맹점을 둔 프랜차이즈 업체로 성장시켰다. 이후 영철버거는 2015년 경영난을 겪으며 잠시 폐업을 했지만, 당시 고대생 2579명이 ‘영철버거 살리기’ 크라우드 펀딩에 나서 6811만원 가량을 모금·기부하면서 재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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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성북구 '영철버거' 앞에 놓인 조화와 편지. 김정재 기자

그는 고대생들 사이에선 ‘기부 천사’로 유명했다.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원재료 값이 오르거나 적자가 나도 ‘1000원’이라는 가격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재료 중 돼지고기를 등심으로 바꿨을 때도, 양배추·청양고추 등의 가격이 올라 버거를 팔 때마다 200원의 적자가 났을 때도 가격을 유지했다. 이날 별세 소식을 듣고 가게를 찾은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생 한모(31)씨는 “영철 사장님께서 정기 고연전(연고전) 때마다 버거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며 “사장님이 ‘학생들을 배부르게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던 게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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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성북구 '영철버거' 앞에 놓인 조화와 편지. 김정재 기자

그는 2004년부터 매년 2000만원 넘게 고려대에 장학금을 기부해 ‘영철 장학금’을 만들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는 가맹점이 어려움을 겪을 때 본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도와주기도 했다. 이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씨의 지인 최모씨는 “영철이 형님이 평생 좋은 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주변 사람들에게 늘 고마운 ‘영철 아저씨’로 기억될 것 같다”고 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도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지금 매일 학생 2000명에게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의 뿌리가 천원의 햄버거”라며 “고인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살아생전 종종 언급했었다는 ‘선한 일에는 선한 보답이 있다’는 뜻의 ‘선유선보(善有善報) 정신’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2016년 재개업을 할 당시 중앙일보에 “선유선보라는 말을 체감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학생들의 응원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14일 찾은 이씨의 가게 앞에는 “해주신 말씀대로 베풀면서 살겠습니다”, “아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또 오겠습니다”는 표현이 적힌 편지와 조문객들이 놓고 간 조화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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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 올라온 추모의 글. 고파스 캡처

고인의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102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5일 오전 6시 30분이다.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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