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덕질’로 한국서화 맥 잇다…문화 독립운동가 오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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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우리 문화 보존·연구의 선구자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옛 글씨를 모아 엮은 책 『근묵(槿墨)』에 직접 쓴 제목(1943년). ‘근’은 무궁화란 뜻으로 우리나라를 이른다. [사진 경기도박물관]

한국 서화사의 족보는 위창 오세창(1864~1953) 손에서 정리됐다. 개화기부터 해방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 서화와 금석학 연구를 집대성했다. 중국어 역관(통역사)이자 컬렉터였던 아버지 오경석의 수집 자료와 자신의 평생 연구를 엮어 만든 책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이 대표작이다. 서화가·학자의 인장을 모은 책 『근역인수(槿域印藪)』, 다양한 고서화와 문헌을 화첩 형태로 정리한 『근역서휘(槿域書彙)』 『근역화휘(槿域畫彙)』 등도 그의 역작이다. 그가 책 제목에 붙인 ‘근역(槿域)’은 ‘무궁화의 땅’이란 의미로, 옛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칭할 때 썼다.

그가 남긴 광대한 자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실(약 500㎡ 규모)에서 열리고 있다. 광복 80주년 특별전 3부작 중 김가진·여운형을 다룬 전시에 이은 ‘오세창: 무궁화의 땅에서’다. 오경석·오세창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감식하거나 수집한 강감찬·김정희·신사임당·정약용·한석봉 등의 글과 그림, 관련 자료 등 90여 점(보물 21점 포함)이 한데 모였다.

위창 오세창을 설명하는 두가지 키워드는 ‘간송 전형필(1906~1962)’과 ‘3·1 운동 독립선언서’다. 청년 갑부 전형필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할 때 그의 길잡이가 돼준 어른이 오세창이다. 이미 60대였던 오세창은 간송을 위해 수많은 작품을 감식하고 계보도를 구성해줬다. 1938년 우리나라 첫 사립미술관으로 설립된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의 이름을 짓고 현판 글씨도 직접 썼다. 이번 전시엔 이 현판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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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득이 그린 ‘오세창 초상’(1949년). [사진 경기도박물관]

위창이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사실은 전시장 전반을 휘감으며 무게감을 더한다. 실제로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서를 교정 봤을 정도로 당대 대표 지식인이었던 그는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정으로부터 대한제국 국새를 돌려받을 때 대표로 받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전시를 꿰뚫는 건 엄청난 ‘덕질’이다. 위창은 3·1 운동 투옥 이후 관직을 멀리하며 서화와 금석학 연구에 몰두했다. 특히 돌과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金文)’을 수집하고 해석하는 건 평생 취미였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각양각색 서체와 이를 응용한 도장은 덕질이 끝까지 가면 스스로 창작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는 걸 입증한다. 게다가 “이런 어려운 시기에 우리 선조들을 옆에 둔 것처럼 보고 느끼기 위해서 이런 걸 모았다”고 스스로 기록한 데서 보이듯 오세창의 덕질은 “우리 역사를 정리·보존하고자 한 의도”(정윤회 학예사)란 점에서 각별하다.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특히 두 가지 전시품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첫째는 이당 김은호의 그림과 오세창의 글씨가 어우러진 2폭 병풍(1937)이다. 독립선언 대표인 오세창과 당대 최고 화가였으나 친일 행적으로 비판받는 김은호의 그림이 어우러진 데서 당시의 복잡한 시대 상황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경기도박물관 소장품으로 이번이 첫 공개다.

두 번째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원본 사경은 신라시대 경주 창림사 무구정탑에 봉안됐다가 1824년 탑의 붕괴로 세상에 드러났는데, 이를 추사 김정희가 친견하고 글씨체를 극찬했다고 한다. 이 극찬과 더불어 오세창의 감식 소견까지 더해진 ‘이건희 기증본’은 훗날 서예가 손재형을 거쳐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소장하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위창은 돌덩어리, 기와 조각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거기 새겨진 우리 안목과 철학을 들여다봤는데, 망한 나라에서 그런 의식으로 지켜낸 게 오늘날 K컬처를 이루게 됐단 걸 되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8일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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