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거래가 125억 더 비싼데 공시가는 3억 더 낮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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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지난해 가구당 37만2000원의 세금을 걷는데 3000원의 세금이 비용으로 들어갔다. 국세통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932만 가구의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가 7조1930억원이다. 보유세 산출에 필요한 주택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데 정부 예산 595억원이 들어갔다. 한국부동산원 등에서 4312명이 참여했다.

전국 주택 내년 공시가 산정 착수
정부 시세 반영률 동결, 현행 유지
가격 비싼데 공시가 낮은 모순도
국토부 공시가격 개념 수정 나서

공시가격은 1월 1일 시세를 기준으로 정부가 발표하는 ‘공인 가격’이다. 보유세만이 아니라 복지 등 생활 구석구석의 67개 행정 목적에 쓰인다. 공시가격에 따라 세금·지역건강보험료 등이 달라지고 기초생활보험·국가장학금 여부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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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동주택 공시가 1위에 오른 강남구 청담동 에테르노 청담. 뉴시스

공시가격 산정은 1년에 가까운 긴 여정이다. 전년 7월 정부의 추진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1월 표준단독주택에 이어 4월 말 공동주택 가격이 마지막으로 고시된다. 현재 표준단독주택 가격은 산정을 끝내고 18일 가격 안 열람을 시작할 계획이다. 공동주택은 사전조사와 현장조사 중이며 내년 3월 가격 안을 공개한다.

공시가격 정의, 적정가격→공적기준가격 

올해 정부가 바뀌었지만 내년 공시가격제도는 별로 바뀌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달 13일 '부동산 가격공시 정책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내년도 공시가격 방안을 확정했다. 공시가격을 좌우하는 시세 반영률(현실화율)은 올해와 동일하게 유지하기로 했다. 공동주택은 69%다. 시세가 10억원이라면 공시가격은 69%를 반영한 6억9000만원이 되는 것이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10월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을 유지하는 것으로 현재 국토부는 방침을 정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전 윤석열 정부 정책을 뒤집고 있는 정부가 공시가격제도에 손을 대지 않는 데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윤 정부가 중단시킨 현실화 논의를 되살릴 경우 문재인 정부 때 시세 반영률 제고가 가져온 공시가 인상에 따른 보유세 급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 장관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세금 문제는 기재부를 중심으로 조세 문제에 대한 TF를 구성해서 논의할 예정"이라며 공시가격발 세제 강화에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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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시세 반영률 동결엔 공시가격제도의 모순도 이유가 된다. 법은 공시가격을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적정가격’으로 정의한다. 사실상 시세다. 그러면서 시세에 일정한 반영률을 적용해 적정가격을 계산하도록 했다. 시세 반영률이 100% 미만이면 공시가격이 시세라는 정의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문 정부가 시세 반영률을 높여 공시가격을 시세 수준으로 현실화하려던 배경이다.

권대중 한성대 교수는 “법이 공시가격을 시세 의미의 적정가격이라고 해놓고 다시 적정가격을 시세보다 낮게 매길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공시가격의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 현실화를 중단하고 공시가격 개념을 다시 정리하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적정가격의 정의를 현실화 계획을 의무화한 규정에 부합하도록 시정하기 위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구상하는 새 적정가격 정의는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시세와 국토부 장관이 결정한 시세반영률을 통해 평가(산정)된 공적기준가격’이다. 이렇게 되면 2005년 주택공시가격제도가 생길 때부터 20년간 지속돼온 현실화 기준이 바뀌는 셈이다.

목표보다 10%P 이상 낮은 초고가 반영률

공시가격의 고질적인 또 다른 문제가 초고가 주택 공시가격이다. 아주 비싼 주택 공시가격의 아주 낮은 시세반영률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문 정부도 이를 의식해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짤 때 시세별로 시세 반영률을 차등 적용했다. 이는 윤 정부에서 2023년 이후 동결된 시세 반영률에도 남아있다. 공동주택의 경우 시세 반영률이 평균 69%지만, 시세 9억원 미만 68.1%, 9억~15억원 미만 69.2%, 15억원 이상 75.3%다.

그런데도 공시가격 산정 결과는 집값이 비쌀수록 현실화율이 낮은 게 현실이다. 지난해 실거래가 최고 38억3000만원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59㎡(이하 전용면적)의 올해 공시가격이 24억8200만원으로 실거래가 대비 반영률이 65%였다. 같은 단지 전용 133㎡의 최고 공시가격(62억5600만원)은 최고 실거래가(106억원)의 5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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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단지에 따라 반영률이 들쭉날쭉해 실거래가가 비싼 데도 공시가격은 낮은 역전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234㎡가 180억원에 거래됐고 올해 공시가격이 109억1000만원이다. 이보다 125억원 더 비싼 305억원에 거래된 강남구 청담동 에테르노청담 255㎡ 공시가격은 106억2000만원으로 되레 2억9000만원 낮다. 성동구 성수동1가 아크로서울포레스트 198㎡도 거래가격(145억원)은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 240㎡보다 25억원 비싼데도 공시가격(71억1600만원)은 4억1900만원 싸다.

올해 100억 이상 거래 지난해 두 배 

올해 주택가격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면서 초고가 주택 가격 급등세가 두드러졌다. 실거래가 50억원 이상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가 671건으로 지난해(451건)보다 50% 가량 늘었다. 이 중 100억원 이상 거래는 올해 42건으로 지난해(24건)의 2배에 가깝다.

지난해 280억원에 거래된 나인원한남 244㎡가 올해 역대 최고인 350억원에 팔렸다. 강남구 청담동 더펜트하우스청담 273㎡ 실거래가도 지난해 말 138억원에서 7월 190억원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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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업계 관계자는 "초고가 주택은 물량이 적고 거래가 드물다 보니 공시가격을 산정할 때 급등한 실거래가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보수적으로 매기는 바람에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에 훨씬 못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일반 국민 입장에선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정부가 늘 외쳐온 공시가격 균형성을 높이려면 가장 기울어져 있고 울퉁불퉁한 초고가 주택의 공시가격 산정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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