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족 살해 후 스스로 생 마감… 그들 유서에 늘 적힌 세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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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족 살해 후 자살 또는 자살 시도 사건 연달아 발생하며 돌봄 정책과 사회적 지지망 강화 필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 챗GPT
최근 가족을 살해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시도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며 돌봄 정책과 사회적 울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 용인시에서 9세 아들을 살해한 4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 11일 오후 경기 용인시 한 아파트 20층에서 투신했고, 아들 B군은 A씨 차량 뒷좌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는 검안의 의견 등을 을 근거로 A씨가 아들 B군의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특수학교에 다니는 B군을 차로 하교시킨 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곧바로 아파트로 올라간 것으로 파악된다. A씨 자택에서는 “실패에 대한 자살입니다”라는 내용의 자필 유서가 발견됐다.
지난 8일 울산에서는 치매를 앓던 모친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중상을 입은 50대 남성 C씨가 경찰에 구속됐다. 존속살해 혐의로 체포된 C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거액의 빚과 생활고로 인해 자살을 결심했다가, 혼자 남겨질 어머니가 고생하실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C씨는 치매를 앓는 모친을 오랜 기간 혼자 부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오후 40대 남성 A씨가 투신한 경기 용인시 기흥구 한 아파트 화단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뉴스1
생활고와 돌봄 문제가 주요 동기
가족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이들의 주요 범행 동기는 ‘생활고’와 ‘돌봄’ 문제로 분석된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뇌인지과학과 연구팀이 지난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과 지인을 살해한 후 자살한 이들이 유서에 가족 다음으로 언급한 단어는 ‘돈’이었다.
연구진이 2013~2020년 경찰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살해 후 자살 사망자 유서 209건 속 단어 7015개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세 가지는 ‘엄마, 어머니’(3.5%)와 ‘아빠, 아버지’(2.1%), 그리고 ‘돈’(1.7%)이었다. 그 외 자살자 유형의 유서에서 부모 다음으로 등장한 키워드가 ‘사람’과 ‘아들’이었던 것과 비교되는 결과다.
자녀 살해와 부모 살해 가해자들은 모두 돌봄 문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자녀를 살해한 부모의 경우에는 자녀의 장애나 건강 문제에 대한 책임감, 자신이 죽은 뒤 남은 자녀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걱정이 주된 원인이었다. 부모가 피해자인 경우, 부모의 신체질환 및 치매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자신이 사망한 이후 돌봄을 맡아줄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로 파악됐다.
연구진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에 대한 이중 부양 부담을 지닌 ‘샌드위치 세대’를 위한 포괄적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경제위기군 등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국가관리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모 살해 후 자살하는 사건의 경우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부담과 경제적 어려움이 주요 원인임을 꼬집으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상돌봄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돌봄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돌봄 사각지대' 우려 커져
최근 존속 살해 건수가 증가하며 ‘돌봄 사각지대’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존속살해 및 미수 건수는 2022년 48건에서 2023년 59건, 2024년 60건으로 최근 3년 동안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 14일 경기 용인에서는 숨진 채 발견된 80대 노모와 단둘이 살던 50대 아들 D씨가 모친을 지속적으로 학대한 정황이 밝혀지기도 했다. 자택 내부 카메라(홈캠)에는 D씨가 모친의 뺨을 여러 차례 때리는 장면이 기록됐다. D씨는 경찰에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인 10여년 전부터 부양해왔고, 밥이나 약을 제때 먹으려 하지 않아 때렸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제갈현숙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전히 우리 사회는 돌봄을 각 가정이나 개인에게 부여하고 있어 취약한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다”며 “실제로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는 것이 어떠한 방식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가능하도록 인식과 문화, 경제 체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지역사회 돌봄 통합 지원법’이 지자체에 온전히 정착할 수 있도록 하고, 돌봄 담당하는 가족 구성원의 사회 활동이 단절되는 현실을 고려해 돌봄 담당자에 대한 사회적 페널티를 제거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소유물로 여기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녀나 부모 모두 개별적인 주체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돌보지 않아도 국가와 본인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돌봄 제공자의 범위를 직계 가족에서 사회적 가족과 공동체 등으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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