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라소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달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을 확정한 뒤 팬들과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중미의 소국 퀴라소가 ‘작지만 강한 스포츠 선진국’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구 15만 명의 작은 나라가 축구와 야구의 최고봉인 월드컵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동시 진출하며 인상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퀴라소는 내년 북중미 대회를 통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첫 선을 보인다. E조에서 독일(유럽)·코트디부아르(아프리카)·에콰도르(남미) 등 쟁쟁한 상대들과 격돌한다. 승패를 떠나 본선에서 치를 경기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발자취다.

내년엔 WBC 무대에도 도전한다. 단, 간판을 ‘네덜란드’로 건다. 자국 태생이 아니어도 해외 방계 혈통까지 폭넓게 국적을 인정하는 WBC 규정을 활용해 네덜란드 야구대표팀 핵심 멤버 중 상당수가 자치령인 퀴라소 태생 선수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지난 2023년 WBC에도 네덜란드 30인 엔트리 중 절반 조금 못 미치는 13명(43.3%)이 퀴라소 국적자였다.

퀴라소의 면적(444㎢)은 제주도의 4분의 1 수준이다. 인구(15만 명)는 서울 송파구(64만 명)의 4분의 1도 안 된다. 이런 나라가 야구와 축구에서 나란히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건 ‘열린 사고’와 ‘시스템 최적화’의 힘이다.

축구는 해외에서 성장한 자국 혈통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는 ‘열린 퀴라소’ 정책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지난달 1일 자메이카와의 월드컵 지역예선 최종전(0-0 무승부)에 나선 23명의 선수 중 퀴라소 태생은 전무했다. 모두가 네덜란드에서 나고 자란 이민 2~3세대 출신이다. ‘퀴라소 출신 없는 퀴라소 대표팀’은 퀴라소 혈통이면 전 세계 어디에 살든 퀴라소인이라는 열린 사고방식이 빚은 산물이다. 올해 역사상 최초로 해외 출생의 한국계 선수(미드필더 옌스 카스트로프)를 국가대표팀에 선발한 한국 축구의 경직된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훈련 중인 퀴라소 유소년 야구 선수들. 네덜란드 자치령인 퀴라소는 앤드루 존스 등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스타들을 배출했다. [사진 MLB 다큐멘터리 캡처]

야구는 정반대다. 자국에서 발굴·육성한 선수들을 메이저리그(MLB)에 진출시키고 WBC 무대에도 보낸다. 퀴라소에는 도미니카공화국 등 인근 북중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MLB 아카데미식 유소년 야구클럽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MLB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영구결번 외야수 앤드루 존스를 비롯해 톱클래스 메이저리거를 다수 배출했다. 내년 WBC에도 투수 켄리 잰슨(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내야수 오지 알비스, 외야수 주릭슨 프로파(이상 애틀랜타) 등 여러 빅리거들이 네덜란드 대표팀의 일원으로 나설 예정이다.

실력 있는 운동 선수를 꾸준히 발굴하는 건 네덜란드식 체육행정 시스템이 거둔 열매다. 정부와 스포츠클럽, 학교가 삼위일체를 이뤄 국가 체육 정책을 함께 떠받친다. 생활체육은 국민 누구든 원하는 종목을 부담 없이 배우고 즐기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축구, 야구 등 프로스포츠의 경우 재능 있는 소수를 대상으로 수준 높은 시설과 지도자,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해 집중 육성한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해외 교류에도 적극적이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퀴라소는 뜨거운 교육열만큼이나 스포츠에 대해 진심인 나라”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