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취객 땡깡 부려도 전화 못 끊는 건…" 달인 소방관의 슬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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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소방재난본부 상황관리 달인으로 선정된 이대욱 소방위가 119상황실에서 신고를 받는 수보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 수보요원(전화받는 대원)의 일은 단순한 ‘전화 응대’가 아닙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이대욱(53) 소방위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긴급ㆍ비긴급 여부를 빠르게 판단하고, 대형 화재 등 응급 상황 땐 신고자와 대화해 내용을 파악하면서도 다른 손으론 출동 지령을 내려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하 불끄다 갇힌 소방관, 상황실 최우수 요원으로
21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 소방위는 2020년 4월부터 상황실에 근무했다. 2005년 소방관이 돼 불을 끄는 진압대원으로 근무하던 중 2015년 5월 불이 난 지하 노래방에서 인명을 수색하다 갇히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 소방위는 “사방에 연기가 자욱했다. 방향을 몰라 출입구를 가늠할 수 없어 아찔했다”며 “이 사고를 계기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치료했지만, 현장 출동 때 나도 모르게 그때 일이 떠오르고, 몸이 움츠러드는 걸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상황실엔 이 소방위가 자원해 전입했다.
상황실 근무 6년 차로 접어드는 이달 그는 상황실 수보요원 150여명 가운데 업무처리 능력이 가장 뛰어난 ‘최우수 상황관리 달인’으로 선정됐다. 1년간의 ▶신고 접수ㆍ처리 건수 ▶심정지 환자 인지율 ▶친절ㆍ적극성과 공감 정도 등을 평가해 상황실 근무자 중 달인을 뽑는데, 이 소방위는 99.86점(100점 만점)을 받았다.
이대욱 소방위가 업무를 보는 책상에 가족 사진이 놓여 있다. 그는 슬하에 네 자녀를 뒀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이 소방위는 “PTSD로 현장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이에 상황실 근무를 자원했다"며 “신고 접수 최일선에서 시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구조 및 화재진압 인력을 빈틈없이 운용하려 노력했다. 소방관으로서, 네 자녀의 아빠로서 이번 선정을 뜻깊고 감사하게 여긴다”고 소감을 밝혔다.
“초과근무 다반사지만… ‘땡깡 민원’ 더 힘들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상황실엔 하루 1900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온다. 한 사람당 1년에 약 1만통의 신고 전화를 처리해야 한다. 업무량이 많은 데다 처음부터 실수 없이 일해야 하는 곳인 만큼 현장에서 구조나 화재진압 등 최소 3년 이상 경력을 갖춘 이들 중 베테랑 대원이 상황실에 배치된다.
이 소방위는 “화재 신고의 경우 출동지령을 내린 후 진압대원들이 제때 현장에 도착하는지, 불길이 더 번지는지, 인명피해나 요구조차 등에 따른 추가 인력 투입이 필요한지 계속 살핀다”고 설명했다.
이런 지원업무를 위해 상황실엔 소방ㆍ구급차에 설치된 카메라 등을 통해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있다. 이 소방위는 “처음 신고를 받은 수보요원이 불이 꺼질 때까지 상황을 관리한다. 교대근무 시간을 훌쩍 넘기는 때도 다반사지만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119 상황실 내부 모습. 상황실엔 소방차와 구급차 등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현장 상황을 모니터할 수 있도록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하지만 달인으로서도 막무가내식 ‘땡깡 민원’ 전화엔 대처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소방위는 “가령 다쳤다는 신고를 받아 위치를 파악하고 구조대를 보냈는데, (신고자가) 취했을 뿐 멀쩡한 때가 많다. 이런 경우 구급대는 철수한다. 수보요원이 구급대로부터 원망을 듣는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똑같은 사람이 다시 전화를 걸어 ‘구조대가 와놓고 왜 조치를 해주지 않느냐’고 따진다. 이 신고자를 달래는 동안 긴급한 신고를 놓칠 수 있는데, (신고자가) 민원을 제기할까 봐 함부로 전화를 끊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상황실에 걸려오는 전화 중 38%가 긴급 신고이며, 나머지는 동물 관련이나 오인 등 비긴급 신고다. 이런 '땡깡 민원' 전화는 주로 여름철과 밤 시간대에 취객이 많이 건다고 한다.
구급환자가 제때 병원에 이송되지 못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이어지는 상황에 관해 묻자 이 소방위는 “말하기 매우 조심스럽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응급 상황 때) 소방과 병원이 각자 최선을 다하는데 대립하는 것처럼 비치는 게 늘 안타깝다. 신속한 제도 보완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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