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토지는 공공재' 출발선 서로 같았는데...홍콩과 싱가포르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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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마이크 버드 지음
박세연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10여 년째 적자에 시달려온 뉴질랜드 경상수지가 1989년 흑자로 반전됐다. 수출 호조 때문이 아니었다. 일본 도쿄의 뉴질랜드 대사관 옆 테니스장 부지를 판 덕분이었다. 테니스장 부지 가격(오늘날 가치로 3700억원)이 경제지표에 영향을 미칠 만큼 비싸다는 것은 정상일 수 없다. 결국 거품은 꺼졌고, 일본 경제는 30년 넘도록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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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래를 표현한 이미지. [셔텨스톡]

영국 이코노미스트 경제 전문기자인 저자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자산인 토지가 세계 금융시스템의 핵심축이 되는 과정을 3세기에 걸쳐 추적한다. 식민지 시대 미국의 투기적 땅따먹기부터 오늘날 중국의 부동산 위기까지, 토지라는 기반 위에서 부가 어떻게 쌓이고 무너지는지 예리하게 보여준다.

토지는 늘어나지도 움직이지도 상하지도 않는다는 특성 때문에 완벽한 담보 자산이 됐다. 오늘날 전세계 신용을 뒷받침하는 최대 규모의 단일 자산이다. 그러다 보니 토지 붐은 흔히 거대한 은행 레버리지를 수반했고, 거품이 꺼지면 그 어떤 자산보다도 치명적인 경기침체를 유발했다.

거품이 꺼지기 전에도 토지와 금융의 강력한 연결 고리는 정상적인 자금 흐름을 왜곡한다. “토지 소유자에게 더 많은 자원이 집중되고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기회를 더 많이 빼앗긴다.” 이것이 바로 책의 원제이기도 한 ‘토지의 덫(the land trap)’이며, 전 세계 경제가 그 덫에 걸려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의 분석 중에 홍콩과 싱가포르의 예가 두드러진다. 토지를 공공재로 삼는 출발점은 비슷한데 결과는 사뭇 다르다. 홍콩은 정부 재정 확대를 위해 고지가 정책을 유지하다 살인적 부동산 가격과 함께 리자청 같은 개발업자들 배만 불렸다. 반면 싱가포르는 지가를 최대한 억제하고, 99년 동안 임차해 자녀 상속도 가능한 임대아파트 중심의 주택 정책을 펼쳤다. 21세기 접어들 무렵 홍콩과 싱가포르의 가구 소득 수준은 비슷했지만 지금은 싱가포르가 홍콩보다 70%가량 높다. 중국은 덩샤오핑 집권 이후 싱가포르 모델에 관심을 가졌지만 권력의 흐름이 홍콩 모델을 따르게 했다. 그 결과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덫에 걸렸다.

저자는 오늘날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하는 이유도 토지의 덫에서 찾는다. “소외된 주택 시장이 소외된 정치운동의 온상이 됐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미국과 영국,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시아 국가들이 주요 분석 대상이지만 우리에게도 소구하는 바가 크다. 결국 같은 덫이다.

치밀한 분석에 비해 대안은 소략하다. 주택과 인프라 공급 확대, 온전한 형태의 토지가치세 도입 정도다. 그래선지 저자는 아일랜드 우스개를 슬쩍 꺼낸다. 한 여행자가 농부에게 도시로 가는 길을 묻는데 농부 왈. “음, 나라면 절대 여기서 시작하지 않을 거요.” 토지의 덫에서 빠져나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 한국은 아직 일본만한 재앙에 이르지 않았다고 썼다. 하지만 시한폭탄을 해체할 때처럼 세금이나 금리 인상, 대출 규제 중 뭐든지 자칫 잘못된 선을 자른다면 재앙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를 완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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