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 올림픽 선수단 덮친 반트럼프 정서...'정치판' 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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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선수들이 겨뤄야 할 대상은 기록 또는 순위뿐 아니다. 정치적 역풍도 넘어야 할 난관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반발이 선수단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다. 선수들이 박수를 받아야 할 무대가 정치의 표적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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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1일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기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 배치 계획에 반대하는 ‘노 ICE(No ICE)’ 시위가 열렸다. EPA=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올림픽에 참가한 미 대표단이 자국 정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 폄훼 행보, 그리고 여러 나라의 분노를 일으킨 이민 단속 때문"이라고 짚었다.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공포와 그곳을 대표해 온 선수들에 대한 연민이 뒤섞여있다는 진단이다.

지난 6일 밀라노 산시로에서 열린 개막식 풍경이 대표적이다. 미 대표단이 입장하는 순간 전광판에 JD 밴스 미 부통령과 우샤 밴스 여사가 등장하자 관중석 곳곳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미국 내 올림픽 중계사인 NBC가 야유 소리를 삭제한 채 평온한 화면만을 송출했다"고 보도했다.

한 미국 코치는 NYT에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는 건 내 인생의 절정이어야 했지만 슬픈 순간이 됐다"며 "나중에서야 야유가 밴스를 향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선수들이 입장할 때 박수가 나오다가 밴스 부부가 화면에 잡히고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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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우샤 밴스 여사가 관중석에서 개막식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올림픽에서 정치 논란이 불거진 데는 스키 선수 헌터 헤스의 발언이 한몫했다. 헤스는 "미국 국기를 달고 있다고 해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8일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려 헤스를 “진짜 루저”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그렇다면 대표팀에 지원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헤스를 공격했다. 국가수반이 올림픽 경기 중인 자국 선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미 대표단의 사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인력이 대회 기간 미 대표단 안전팀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밀라노는 당신들을 혐오한다"는 시위가 일며 현지 분위기가 험악해진 면도 있다. 쥬세페 살라 밀라노 시장은 이탈리아 방송에서 "ICE는 사람을 죽이는 민병대와 다름없다"며 "마음대로 영장을 끊고 남의 집에 들어가는 이들이 밀라노에 오는 것을 절대 환영하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이유로 미 피겨·하키·스피드스케이팅 연맹은 선수단 환대 공간 이름을 ‘아이스 하우스’에서 ‘윈터 하우스’로 바꿨다. ICE와 발음이 동일해서다. 미 피겨 관계자는 "우리가 미끄러지는 표면(ice) 자체가 정치적 단어가 될 줄 몰랐다"고 NYT에 말했다.

선수들은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에 네 번째 출전한 알파인 스키 선수 미케일라 시프린은 관련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넬슨 만델라의 발언을 인용했다. "포용의 가치, 다양성과 친절과 나눔의 가치, 끈기와 근면함 같은 가치를 대표하고 싶다"는 게 시프린의 희망이다. ICE 규탄 시위가 시작된 미네소타 출신 미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켈리 패넥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대표하고 싶은 건 1년 중 가장 추운 날에도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싸우는 그 수만 명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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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코르티나 컬링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알파인 스키 선수 미케일라 시프린이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부 선수는 올림픽에서 정치적 견해를 숨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성소수자인 미 피겨 선수 엠버 글렌은 "사람들은 ‘너는 운동선수니까 네 일만 해, 정치 얘기하지 마’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치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성소수자 정책에 대해서도 조용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건 이탈리아인들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인 바바라 바릴레는 NYT에 "우리는 지금의 미 정부를 큰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선수들이 자기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야유를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올림픽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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