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마르코 폴로는 정말 중국에 갔나...의혹 풀어준 '공주 결혼' …

본문

bt39ccdc69ea529fc45fd9122d5ffbcd77.jpg

책표지

중국은 대국인가: 세계와 중국의 800년 역사 
티모시 브룩 지음
조영헌·설배환·심호성 옮김
마르코폴로

마르코 폴로는 정말 중국에 갔을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감화를 받아 아시아로 가는 항해를 도모했지만, 학계에선 조작된 이야기라는 의심을 오랫동안 거두지 않았다. 만리장성이 언급되지 않는다, 중국(원) 측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등의 이유다. 그러면서 무역상이던 그가 외국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특유의 과장법을 섞어 그럴듯하게 펼쳐냈다는 게 '허구설'의 요지였다.

논쟁의 실마리는 의외의 지점에서 풀렸다. 쿠빌라이 칸이 폴로에게 넘긴 가장 유명한 임무이자, 마지막 임무였던 쿠케친 공주 호송이다. 일 칸국의 지도자 아르군이 쿠빌라이 칸에게 부인을 요청하자, 쿠빌라이는 왕족 여성 쿠케친을 보내기로 하고, 17년간 제국을 위해 일했던 폴로 가족을 호송대에 포함시켰다. 이들은 2년여의 여정 끝에 쿠케친을 무사히 일 칸국으로 보냈지만, 그 사이 아르군이 사망하는 바람에 결국 쿠케친은 그의 아들 가잔과 결혼했다.

허언의 '끝판왕' 같은 이야기가 빛을 본 것은 아편전쟁 때 불태워져 일부만 남은 『영락대전』의 작은 기록이 20세기 중반 확인되면서다. 올루다이, 아비시카, 코자 세 사람을 아르군에게 보내면서 경비를 요청하는 행정 문서였다. 이들의 이름은 『동방견문록』에도 등장한다. 아르군이 쿠빌라이에게 부인을 요청하면서 파견한 관리들이었다. 제아무리 해외 사정에 밝은 상인이더라도 왕실 간 진행된 혼담 담당자까지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대국인가: 세계와 중국의 800년 역사』의 저자 티모시 브룩은 이것이야말로 "폴로가 실제 중국에 있었다는 것을 확증해주는 자료"라고 설명한다.

일부 대중문화에선 폴로와 쿠케친의 관계를 낭만적 상상력을 더해 그려내기도 했지만, 길었던 호송에서 읽어낼 역사적 편린들이 적지 않다. 쿠빌라이는 세계 제국을 호령했지만, 유독 해상에선 맥을 못 췄다. 일본, 참파(베트남 남부), 자바 등에 대규모 원정군을 보냈다가 굴욕적인 실패만 떠안았다. 그런 상황에서 쿠케친 공주 해상 호송대는 원나라의 위상을 해상에서 과시할 절호의 기회였다. 폴로에 따르면 14척의 배로 구성된 호송단에는 공주의 수행원만 600명이 있었을 만큼 대규모로 편성됐다. 이들은 일종의 외교 사절단이기도 했다. 항해에 2년이나 걸렸던 이유다.

그렇다면 아르군은 왜 쿠빌라이에게 아내를 요청했을까. 당시 몽골 제국은 원심력이 강해지고 있었다. 원나라의 지배력은 중국대륙으로 한정됐고, 나머지 방대한 영토는 4개의 칸국으로 나뉘어 독자적 행보를 걸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칭기즈 칸의 핏줄이라는 상징 자산은 여전히 중요했다. 원의 간섭은 싫지만, 리더십의 권위를 위해서는 원의 상징 자산에 기대야 했던 셈이다. 이는 비단 아르군뿐 아니라 고려의 충(忠)자 돌림을 쓴 왕들이 맞닥뜨렸던 현실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 책은 해상 교역, 전염병, 상인, 라마 승려, 포로, 금세공사, 사진사 등 중국 바깥에서 존재했던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제국으로서의 중국을 응시하고 있다. 제국은 스스로 규정짓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주변에서 그 위치를 어떻게 부여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9,006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