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변기 막힌 美 항모, 이란선 시위 꿈틀…장기 대치 신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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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모두 장기화된 군사적 대치 국면에서 벼랑 끝 전술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다. 역내 억지력을 유지하겠다며 배치된 미 항모전단은 높은 피로도를 호소하고 있고, 이란 역시 반정부 시위가 다시 꿈틀대고 있어 체제 불안정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미 포드함이 20일(현지시간)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역대 최장기 항모 파견 기록 눈 앞
장기 대치의 대가를 당장 직접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쪽은 군사 압박의 최전선에 선 미 장병들이다.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항모 포드함은 당초 6개월로 예정됐던 임무가 두 차례나 연장되며 11개월 연속 배치라는 역대 최장기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6월 약 5000명의 승조원을 태우고 지중해로 출항한 포드함은 같은 해 10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카리브해로 향했다가 올해 초 다시 중동 임무를 받고 이란으로 향하고 있다. 평시 항모 배치 기간 6개월을 훌쩍 뛰어넘어 8개월째에 접어든 해상 작전 상황이다.
WSJ는 승조원과 그 가족들을 인용해 항모 내 고충을 전했다. 어떤 승조원은 파병 기간 중 증조부의 죽음, 누나의 이혼, 형제의 건강 악화 등 가족의 중대사를 모두 놓쳤다고 한다. 귀환 시기에 맞춰 여행 등 개인적인 일정을 계획했다가 날벼락을 맞은 경우도 있다. 돌아갈 날을 예상할 수 없으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데이비드 스카로시 제럴드 포드함 함장조차 “몇 주 뒤면 집에 돌아가 뒷마당 울타리를 고치고 있을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작전 보안상 2~3주씩 통신이 끊길 땐 가족들은 더욱 지친다. 이따금씩 연결되는 통신에 언제 전화가 걸려올지 몰라 가족들은 온종일 촉각을 곤두세운다.
변기 막히고 정비 밀리고…항모 한 척 문제 아니다
함정 내 인프라도 수시로 말썽을 피운다. 650여 개의 화장실을 연결하는 진공 배수 시스템은 한때 하루 평균 한 번꼴로 먹통이 됐다. 누군가 최하층 갑판 변기에 쓰레기를 버린 게 원인이었다. 한 해군 장병은 “많은 승조원이 불만을 품고 있다”며 “일부는 이번 파병 기간이 끝나면 해군을 떠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WSJ는 지난해 4~5월 파병 임무 막바지에 접어든 트루먼함이 홍해에서 전투기 추락 사고를 겪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과도한 임무 가중은 포드함뿐 아니라 미 해군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으로 당시 후티 반군에 대응하던 전투기들의 높은 작전 강도가 지목됐다.
200일 이상 작전을 지속 중인 미 해군 항모 제럴드 R. 포드. 미 해군
시계제로 핵 협상에 고조되는 전운
미국의 이런 강행군은 미·이란 대치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9일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고착된 데 “정말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며 “협상 시한으로는 10~15일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의 대이란 군사 작전 계획이 상당히 진전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로이터는 20일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명령만 내리면 제한 타격뿐 아니라 이란 지도부 교체까지 염두한 시나리오가 마련됐다”고 전했다.
“이란 타격은 베네수엘라와 다르다”…미국의 부담감
반면 군사 작전이 미국에게도 결코 쉽지 않을 선택지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 “이란 타격이 마두로 체포보다 훨씬 복잡하다”며 “미국을 장기전의 수렁으로 빠뜨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안에서 불과 16㎞ 떨어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와 달리 테헤란은 페르시아만에서 약 640㎞ 내륙에 위치해 있어 미군의 접근이 까다롭다.
또 이란은 사거리 1900㎞에 달하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예멘의 후티·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저항의 축도 여전히 건재하다. 최고지도자 한 명을 제거하는 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란, 외부 압박 속 내부 불안 재점화
사태 장기화에 타격을 입는 건 이란 당국도 마찬가지다. NYT 등에 따르면 21일 샤리프 대학과 아미르카비르 대학 등 명문대에선 앞서 시위의 사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고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도 다시 등장했다.
이란 테헤란 아미르카비르공과대학에서 21일(현지시간) 시위대가 모여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각에선 미국과 이란 모두 전면전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핵 협상이 봉합 수순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관측 역시 나온다. 가디언은 21일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HEU) 300㎏을 해외 반출하는 건 거부하되, 농축도를 60%에서 20% 이하로 낮추는 희석 방안은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며 “이는 앞으로 며칠 내 이란이 미국에 제시할 예정인 역제안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출구 전략에 무게를 둔다면 이란의 핵 농축 ‘제로’를 요구하는 데서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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