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하르그섬 점령’은 나비 날갯짓…주한미군, 중·러 견제 맡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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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협상을 통한 종전과 지상전 전환을 오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란전 접근법이 한반도 안보에도 조용한 파장을 일으키는 조짐이다. 이란과의 협상을 앞두고 주도권을 쥐기 위한 성격이 크다는 게 중론이지만, 그가 엄포를 놓은 지상전이 현실화할 경우 미 안보자산이 중동에 집중되며 한반도에 나비효과가 닥칠 수 있어서다. 특히 미국이 ‘두 개의 전쟁’을 유지할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날 경우 이 틈을 노린 중국의 굴기나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등 후폭풍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하르그섬을 점령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많은 선택지를 갖고 있다”며 “다만 그렇게 된다면 일정 기간 그곳에 머물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들은 아무런 방어망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경민 기자
페르시아만 북동부에 있는 하르그섬은 이란의 대표적인 원유 수출 터미널이 있어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미군이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 공격 대상 중 하나로 거론된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해병대원 2500명 등이 합류하면서 중동 내 미군 규모는 평소보다 1만명 더 많은 5만명 이상으로 늘었다.
앞서 미 중부사령부는 엑스(X)에 “강습상륙함 트리폴리함(LHA 7)에 탑승한 미 해군과 해병대 병력이 중부사령부 관할 구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해당 병력은 약 3500명의 상륙준비단과 31해병원정대로 구성됐는데 상륙작전을 위한 전술 자산의 운용이 주 임무다. 이와 관련, 미 CNN 방송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이란에서 ‘움직이지도 침몰하지도 않는 항공모함’으로 부르는 이(호르무즈) 해협의 7개 섬이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남성이 이란의 신임 최고 지도자 모자타바 하메네이(Mojtaba Khamenei)의 사진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의 공세도 지상전 전개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요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2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가 이란에서 날아온 미사일 공격을 받아 기지에 배치된 E-3 센트리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1대가 파손되고 미군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마즐리스(의회) 2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적은 공개적으로 협상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은밀하게 지상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며 “우리 병사들은 미군이 지상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그들의 목숨을 불태울 작정”이라고 항전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이미 우크라이나 전장에 지원하던 미사일 방어 시스템 등을 중동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군사 자산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란에서 지상전이 현실화하면 장기전이라는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큰 데다 미국이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느냐는 보다 근본적 문제 제기로 전환될 수 있는 셈이다.
미국이 냉전 종식 뒤 유지해온 두 개의 전쟁 기조는 핵심 지역 두 곳에서 한꺼번에 위협이 발생하더라도 동시 대응해 승리할 수 있는 압도적인 억지력을 유지하는 게 골자였다. 미국이 상정한 지역은 주로 중동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였다.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2012년 이를 사실상 접어두고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내세운 건 의지의 문제였다. 중동 전쟁의 늪에서 벗어나 동맹 관계를 최대한 활용,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면서 본토 방어에 주력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란전 장기화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비 태세가 약화한다면 이는 의지를 넘어 능력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이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할 의사나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은 이란 뿐 아니라 북·중·러 등 반서방 연대 국가들에 위험 신호로 작동할 여지가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란 전쟁이 지상전으로 확대된다는 건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며 “미국은 늘 두 개 지역에서 큰 갈등이 각각 발생하는 상황을 꺼려왔는데 이렇게 되면 인도태평양 지역 유사시 대처할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라고 짚었다.
이는 한반도 안보 공백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미군 자산의 중동 집중이 지속되면 주한미군 자산도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미 당국은 이달 초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발사대·요격 미사일과 기타 공격용 미사일에 대한 반출 절차를 밟았는데 지상전이 시작되면 추가 반출은 수순이라는 게 군 안팎의 의견이다. 지상전은 단순 공중전보다 병력 및 자산 소모 규모가 크다.
물론 주한미군 내 제35방공포병여단 등 부대는 대이란 지상전을 위한 신속대응부대와는 성격이 다른 만큼 우선 배치될 가능성이 작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이란전이 블랙홀처럼 미국의 군·정보 자산을 빨아들일 경우 한반도에 직·간접적 여파는 불가피해 보인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미국이 이를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 방어에 국한하지 않고 대중 견제로 확대하는 본격적 기회와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제이비어 브런슨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은 러시아 북부함대, 중국 북부전구, 북한군 모두에게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미 당국은 주한미군이 중국과 러시아 견제에도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지속해서 시사해 왔다.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 정책차관도 지난 1월 방한해 “중국과의 상호작용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순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거부를 통한 억제력’과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당시 그는 미 국방전략서(NDS)를 언급하며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제1도련선을 따라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란 전쟁을 계기로 미 당국이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 부대의 태세를 검토하면서 동맹 현대화의 흐름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변경하는 행보를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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