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호르무즈 방치한 채 발 빼나…협상 실체도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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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협상 상대가 불분명해 이른바 ‘번지수 논란’으로 인한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백악관은 30일(현지시간) “공개 언급은 비공개적으로 오가는 것과 많이 다르다”며 물밑 조율을 시사했지만, 이란은 “공습 이후 어떠한 협상도 진행한 적 없다”며 협상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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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골프를 치며 주말을 보낸 뒤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전쟁 장기화에 대한 부담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전쟁 개시 명령으로 인해 초래된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책임을 동맹국에 떠넘기고 전쟁에서 손을 뗄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협상 실체는 있나?…결정권 여부도 의문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의 세 번째 정권과 협상을 하고 있다”며 “누구도 상대해 본 적  없는 다른 사람들로, 솔직히 매우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아닌 다른 세력과 협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함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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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현지시간)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주말을 보낸 뒤 백악관으로 복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ABC 인터뷰에서 협상 대상에 대한 질문을 받자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란(측 협상 대상자)이 자신들의 발언을 행동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란 마즐리스(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을 지목하며 “그가 나에게 선박(의 호르무즈 통과)을 승인해준 인물”이라고 말했다. 갈리바프가 협상 대상이거나 최소한 협상 창구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갈라바프는 이날 X(옛 트위터)에 “적들은 자신들의 바람을 ‘뉴스’인 양 포장하며 동시에 우리 국가를 위협하고 있지만 그들은 완전히 틀렸다”며 “그들이 한 번 공격하면 우리는 여러 번 반격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신의 뜻에 따라 이란 국민들은 혁명 최고지도자의 지도 아래 적들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고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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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마즐리스(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30일(현지시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적들은 자신들의 바람을 ‘뉴스’인 양 포장하며 동시에 우리 국가를 위협하고 있지만, 그들은 완전히 틀렸다″며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X계정 캡쳐

그가 언급한 최고지도자는 사망한 하메네이의 아들이자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권교체를 통해 세 번째 정권과 협상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상충되는 말이다.

이란 “협상 없었다”…“협상 주체 사라져”

이란 정부도 “미국과 어떠한 형태의 협상도 진행한 적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공식 반박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현재 전달된 내용은 중개인(파키스탄)을 통한 미국의 협상 의사일 뿐”이라며 “무엇보다 분명히 할 점은 지금까지 미국과 협상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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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현지시간 30일 브리핑 도중 이란측 협상 대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파키스탄이 주도한 종전 회의에 대해서도 “파키스탄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틀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이란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바가이 대변인은 특히 “미국에서조차 자국 외교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의문”이라며 지난해 6월 핵시설을 공습하고 지난달 전쟁을 감행한 미국의 태도를 비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 핵심 인사들의 표적 살해로 이란 지도부가 흔들리면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며 “특히 이란의 협상 대표들은 지도부가 어느 수준까지 양보할 의사가 있는지, 심지어 누구에게 협상안을 검토 및 허가받아야 하는지조차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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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을 애도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협상 주체들이 실제 권한이 있는지 불명확하다는 의미다. 심지어 공식 후계자로 알려진 모즈타바 역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거나 육성을 공개한 적이 없어 실체에 대한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 “협상단이 매우 이상하다”며 불만을 표했는데, 정보 당국 관계자들은 NYT에 “이러한 좌절감은 이란 정부가 미국의 제안에 대응하고 결정할 능력이 없는 점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했다.

최저 지지율…호르무즈 봉쇄 상태로 ‘타코’?

협상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는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호르무즈해협 폐쇄가 지속되더라도 이란을 상대로 한 군사 작전을 끝낼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개전으로 인해 초래된 해협 폐쇄를 방치하고 전선에서 발을 빼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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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만 무산담 주 경계 인근 라스알카이마 북부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에 화물선들이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의 당국자들은 WSJ에 “미국은 이란의 해군과 미사일 전력 약화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 군사 작전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며 “이후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위한 외교 압박이 실패하면 유럽과 걸프 지역 동맹국에 해협 개방 노력을 주도하게 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지상군 투입 등 군사적 선택지에 대해선 “즉각적인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뒤 국제 유가가 치솟자 “미국은 호르무즈해협과 큰 상관이 없으며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많이 의존하므로 이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엔 군함 파견을 요구하기도 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수전 멀로니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봉쇄된 해협을 방치한 채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하다”며 “에너지 시장은 선천적으로 글로벌하기 때문에 해협 폐쇄가 계속되면 훨씬 더 심각해질 경제적 피해로부터 미국을 격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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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30일 테네시주 내슈빌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이란 전쟁 직전 갤런당 2달러 중반이던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쟁 이후 한달만에 4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에서도 ‘트럼프는 항상 물러선다’는 의미의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논란을 자초하는 배경은 오는 11월 선거와 관련이 있다. 이날 공개된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3%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이란 전쟁은 29%, 물가 대응에 대해선 24%만 지지 의사를 표했다. 물가는 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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