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광화문 현판 이번엔 1+1? “한글이 시대정신” “유산 원형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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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기존 현판 외에 한글 현판을 추가로 설치할 경우를 예시한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국민모임' 측 제작 이미지. 사진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국민모임

한자 현판은 과거에 갇힌 한계의 상징이다. 국가 정체성을 밝히는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

서울의 중심에서 힘자랑을 하려는 세력이 끊이질 않았다. 광화문이 시류에 흔들려선 안 된다.

2023년 대대적인 복원 제막식을 했던 서울 광화문(光化門) 현판이 ‘한글 현판’을 둘러싸고 다시금 논란에 휩싸였다. 조선 고종의 경복궁 중건 당시를 원형으로 삼은 현판을 ‘시대정신’에 맞춰 조정하자는 안이 올 초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제기되면서다. 문화유산의 원형 보존을 주장하는 원칙론과 20세기 이후 공간 변화의 상징성을 내세우는 주장이 현판 글씨를 두고 부딪치는 모양새다.

2010년 '한자 현판' 복원 뒤 논란 반복 #‘한글 현판 추가 설치’ 절충안 급부상 #문체부 주최 토론도 찬반 입장 팽팽

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한글 현판 추가 설치 의견 수렴을 위한 광화문 현판 토론회’는 이 같은 대립이 평행선을 달린 자리였다. 이날 발제에서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박정희 정권 당시 ‘콘크리트 광화문 복원’과 수십년에 걸친 현판 교체 역사를 되짚으면서 “시류에 따라 문화유산을 변형하는 것은 과거를 조작하는 것”이라고 한글 현판 추가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면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지금의 시대정신은 단순한 과거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면서 “국가 상징 공간에서 문자와 문화 차원의 정체성을 한글 현판으로 나타내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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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한 1893년 이전 광화문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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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로 된 '광화문' 현판이 걸렸을 당시 모습. 한글학회 등 관련단체들은 당시 문화재청의 `光化門' 한자현판 교체 방침에 항의하며 한글현판 수호 시위를 벌였다. 중앙포토

광화문 한글 현판은 한글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안됐지만 주무 기관인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과 문화유산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번번이 좌초했다. 최근 기류가 바뀐 것은 기존 현판을 두고 아래에 훈민정음체 현판을 추가로 달자는 절충안이 나오면서다. 김주원 한글학회장은 토론에서 “훈민정음이 창제·반포된 곳이 경복궁인데, 두 현판을 나란히 두면 원래 한자 쓰던 사람들이 이젠 한글을 쓰고 한류를 일으켰다는 뜻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올해가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자 한글날의 효시인 ‘가갸날’ 선포 100주년이란 점도 강조했다. 앞서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1월 업무보고에서 “문화재 원형을 지키면서도 한글 현판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요구를 충족하는 안”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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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을 바탕으로 다양한 색상으로 재현해 본 현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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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서울 광화문 월대 복원과 함께 새로 바뀐 광화문 현판이 선보였다. 중앙포토

광화문 현판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그간 복원 과정에서 ‘원형의 실체’가 오락가락 하면서다. 18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로 쓴 광화문 현판은 6·25 전쟁 때 폭격으로 목조 문루가 불타면서 함께 없어졌다. 1968년 복원 때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장려하던 ‘한글 전용화 정책’에 맞춰 직접 한글 현판을 썼다. 이후 경복궁 복원 기준이 ‘고종 중건 당시’로 정해지면서 2010년 임태영 글씨로 복원한 새 현판이 걸렸다. 그러나 졸속 제작으로 목재가 갈라지는 사고가 난 데다 2018년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면서 ‘검은 바탕 금색 글씨’로 다시 제작됐다.

나아가 광화문이 경복궁의 정문일 뿐 아니라 한국 현대 발전사가 녹아 있는 광화문 광장의 얼굴이란 점도 ‘한자 현판’을 꺼리게 만드는 요소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은 “최근 BTS(방탄소년단) 공연이 보여줬듯 광화문은 세계인에게 K컬처의 성지로 여겨진다”면서 “한자 현판이 물리적 복원에 가치를 두는 반면, 한글 현판 추가 설치는 문화관광의 서사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최근 중국 자금성 등 해외 사례를 들면서 ‘한글 현판 병기’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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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때 축조된 자금성 건물엔 청나라가 집권 뒤 한자와 만주어를 병기한 현판이 걸려 있다. 사진은 융종문 편액(현판). [중앙포토]

이날 토론회에선 ‘다중(복수) 현판’이 억지스럽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건축학)는 “목조 건물 현판 자체가 한·중·일 등 한자 문명권의 산물인데, 한글 현판으로 동어반복하는 건 의미 없다”면서 “디지털 친화적인 한글을 미래 매체와 결합해 어우러지게 하자”고 제안했다. 자금성 현판의 경우 청나라 집권 세력이 기존 한자어에 만주어를 병기한 것이라 맥락이 다르다고 하면서다. 서일대 홍석주 교수(건축과)도 “광화문을 따로 떼기보다 경복궁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2045년까지 진행형인 경복궁 복원에서 자칫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체부는 이번 토론회가 “충분한 의견수렴을 위한 절차일 뿐”이란 입장이지만 기존 현판도 이 같은 과정을 거친 바 있다. 2010년부터 관련분야별 의견수렴(문화재, 문화관광, 국가브랜드, 언론 등)과 공청회(1회), 토론회(4회), 관련단체 간담회(2회), 자문회의(3회) 등을 통해 임태영 글씨(한자)로 재차 결론 났다. 지난 2024년 유인촌 당시 문체부 장관이 ‘한글 현판’에 동조할 당시 공개적으로 반박했던 국가유산청 측은 이번에는 별도 이견을 내지 않은 채 “임기가 다한 문화유산위원회 교체까지 맞물려 있어 당장은 어렵지 않겠느냐”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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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한글로 쓴 광화문 문구를 들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에 대한 주요 입장 및 논거를 위해 마련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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