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본은 신뢰하는 나라? 통행료 없이 호르무즈 연 이란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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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일본 정유사 이데미쓰고산(出光興産)의 초대형 원유운반선 ‘이데미쓰마루호(出光丸)’가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와 나고야 항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달에만 일본 관련 선박 4척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했다. 한국 관련 선박들이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발이 묶인 상황과는 대비된다.
일본 정부는 앞서 쇼센미쓰이(商船三井) 소유의 선박 3척이 호르무즈를 빠져나왔을 당시만 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협상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쇼센미쓰이 측의 통행료 지급 여부, 일본인 선원의 탑승 여부조차도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거둔 외교적 성과임을 명시했다. “통행료도 내지 않았다”고 적극적으로 알렸다.
일본 도쿄의 이데미쓰고산 본사. 사진=연합뉴스
일본의 이번 외교적 성과는 전통적인 일본과 이란의 우호 관계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정치적 셈법도 작용했다. 이데미쓰마루호 통과 소식이 알려졌던 당시 주일 이란대사관 측은 X(옛 트위터)에 양국의 우호관계를 언급하며 1953년 ‘닛쇼마루호’ 사건을 언급했다. 서구의 봉쇄조치로 이란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됐을 당시 일본은 이란산 원유를 독자적으로 들여왔는데 당시 쓰인 유조선이 닛쇼마루호로 양국 우호 관계의 상징이 됐다. 73년 전 닛쇼마루호의 선주 역시 이데미쓰마루호와 같은 이데미쓰고산이다.
일본이 오랜 기간 이란을 중요시해온 점도 작용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8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가진 데 이어 30일에도 20여 분간 통화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데미쓰고산의 선박이 이란 정부 허가를 얻어 통과한 데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을 전달하고 앞으로도 긴밀히 소통해나가기로 했다. 이란 타스님 통신에 따르면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 항만 봉쇄 조치와 미국의 도발적 언사에 대해 “명백한 국제법 및 규정 위반”이라며 비판했다고 한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 AP=연합뉴스
이처럼 양국 정상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배경에는 지일파이자 일본 외교의 핵심 자산인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있다. 2008년부터 4년간 주일 이란대사를 지냈고 2022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중광장 훈장도 받았다. 주일 대사로 재임할 당시에는 자신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新久地(아라구치)’ 한자 이름을 명함에 새기고 다녔을 정도로 일본에 큰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주일 대사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외교와 정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분석을 담은 ‘이란과 일본’이라는 회고록을 냈고 일본어판이 2024년도에 출간되기도 했다. 책 말미의 특별 대담 코너에는 “이란 국민에게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10개 꼽아보라고 하면, 10명 중 9명이 일본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재산이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도 아라그치 외무장관과 친밀한 관계다. 전쟁 발발 이후부터 외무성이 최고위층 수준에서 전화 회담을 거듭해왔다.
일본 정계도 이란을 중요하게 여긴다. 일본·이란 우호의원연맹의 회장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가 맡고 있다. 지난 3월 26일에는 연맹 총회를 열고 이란의 페이만 세아다트 주일대사를 초청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이란의 입장을 설명한 세아다트 대사는 총회 이후 취재진에게 “일본은 이란의 친구이며 우리는 일본을 신뢰한다”며 “일본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입장에서도 일본을 특별 대우하는 것은 다분히 계산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미국과 이스라엘 맞서기 위해 통항권이 보장된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해버린 무법적 행위자가 아니라 우호국에는 정상적인 상업 활동을 보장하는 주권국임을 피력한다는 것이다. 특히 G7 중 하나이면서 미국의 최우방국인 일본에 대해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라는 메시지를 서방국들을 상대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후 재건 등에 일본 측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을 수도 있다. 일본에 대한 이란의 특혜 제공에 대해 “선전 도구에 해당한다”라거나 미국의 동맹국 중 가장 대화의 여지가 열려 있는 “우회로로 판단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2023년 1월 15일 오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아랍에미리트(UAE)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한국 정부는 정병하 외교부 장관 특사를 파견해 아라그치 장관을 만나는 등 고위급 인사 접촉을 이어갔지만, 구체적 성과는 내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정부의 과오도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1월 15일 아랍에미리트를 국빈 방문하던 중 파병 부대인 ‘아크 부대’ 장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라는 등의 발언을 해 이란의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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