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만큼 ‘너’를 인정....김대중·브란트·만델라가 빛낸 ‘화해의 정치’[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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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김대중의 화해와 통합
김학노 외 지음
지식산업사

2026년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극단적인 진영 갈등과 혐오라는 ‘분열 정치’의 늪에 빠져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2024년)을 맞아 기획되어 이번에 출간된 신간 『김대중의 화해와 통합』은, 이러한 시대의 난제 앞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정치·경제·여성·북한·국제 분야 등의 전문가 7명이 김대중의 정치를 ‘화해와 통합’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조명했다.

이 책의 책임편집을 맡은 김학노 영남대 교수는 김대중 정치를 관통하는 핵심 원리로 ‘서로주체적 정신’을 제시한다. 이는 상대방(적대적 상대 포함)을 나와 똑같이 자유의지를 가진 ‘또 다른 주체’로 인정하며 서로 대등하게 만나는 자세를 가리킨다. 서로주체적 정신은 김대중이 추진한 ‘보수 세력과의 화해와 통합’, ‘지역 간 화해와 통합’ ‘대북 정책의 화해와 통합’, ‘국제정치의 화해와 통합’ 등으로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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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DJP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왼쪽)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 [중앙포토]

DJP연합과 연립정부 구성은 가장 극적인 화해의 실천이었다. 5·16 쿠데타 세력의 핵심인 김종필과 손을 잡은 것은 단순히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보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결단이었으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양분해 온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역사적 화해’를 의미했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했고, 집권 후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영남 출신 인사들을 중용한 것은, 보수 세력 심장부와의 화해를 상징하는 대표적 조치였다.

보수 세력을 국정의 한 축으로 인정함으로써 ’빨갱이 공세‘를 벗어나며 사회적 안정을 이루지 못했다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북 햇볕정책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계급 간 갈등 해소를 위한 노사정위원회 설치, 한·일 과거사 극복을 위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도 서로주체적 정신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국정 운영의 실제 작동 원리로 반영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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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중앙포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나란히 김대중 정치의 세계사적 의미를 비교했다. 세 지도자는 적대 세력과 손을 잡는 연합정치를 통해 안정적인 국내 기반을 먼저 마련한 후에 과거사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적 화합을 이끌어내는 ‘화해의 정치’를 본격 실천한 공통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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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운데(가 시사저널 초청으로 내한해 김대중 평민당 총재, 박준규 민정당 총재와 만난 모습. [중앙포토]

이 책은 김대중의 서로주체적 정신과 그 실천의 비범함을 입증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생 100주년의 찬사가 자칫 살아있는 역사를 박제된 신화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것 같다. ‘화해 정치’의 부작용과 실패한 정책까지 충분히 돌아보면서 성찰의 소재로 삼고, 정치적 반대파의 목소리까지 이 축제의 자리에 더 많이 초대한다면, 그의 서로주체적 정신을 계승하려는 이 책의 취지가 더 잘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김대중이라는 정치적 거인은 역사의 거울이 되어 우리 안의 혐오를 비춰보게 한다. 상대를 주체로 보는 일은 결국 나를 주체로 세우는 길이 된다는 이 책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혐오가 일상이 된 이 시대에 우리 모두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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