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원피스 입고 ‘노가다’ 간다…2030 웃고울린 공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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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영 감독은 공사장에서 일하는 어머니 김공순씨 삶을 영화 ‘공순이’에 담았다. [사진 필름땀]

“가만 보자. 고흥에서 태어났으니, 고흥, 고흥, 공, 공, 공순이 어떻노?”

평생 족쇄처럼 따라다닌, 부끄러운 이름 공순이. 청각장애인인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탓에 이름 없이 자란 그에게 마을 이장이 국민학교 입학 서류를 써주며 즉석에서 지어줬다. 이 일화를 난생 처음 딸에게 설명하던 김공순(59)씨는 혼자 왁자지껄 웃는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정도로 긴 시간 웃는 김씨의 모습에 관객석에선 훌쩍훌쩍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난달 30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공순이’(러닝타임 88분)의 한 장면이다. ‘한국 경쟁’ 부문에 초청된 ‘공순이’는 유소영(34)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 김씨를 대상으로 3년간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어머니의 이름을 부끄러워했던 딸이 어머니의 삶을 밀착 취재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가족사와 어머니의 모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내용이다. 관객들은 1시간 넘게 웃고 울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박수갈채를 보냈고, 줄지어 김씨에게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된 사흘간 티켓은 모두 매진됐다.

지난 1일 전주의 한 호텔에서 유 감독과 김씨를 만났다. 호텔 로비에서도 김씨에게 “영화 잘 봤다”며 인사를 건네는 이가 있을 정도로 전주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김씨는 “혹시 몰라 사인을 연습해왔는데, 정말 하게 되어 신기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처럼 10대 시절 부산의 한 신발 공장에 취직해 ‘공순이’의 삶을 견디며 동생들을 키웠다. 결혼한 뒤에는 남편의 사업 부도와 외도로 이혼하면서 다시 노동을 시작해 두 자녀를 키웠다.

다큐는 김씨가 철근을 고르고 시멘트를 밟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는 “도배·미장·장판·도장·타일·마루·목공·설비 등 집 짓는 일은 다 할 줄 안다”고 했다. 김씨는 원피스를 입고 예쁜 귀걸이를 하고 출근한다. 탈의실도 없는 현장에서 씩씩하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는 남자 인부들을 진두지휘하는 깐깐한 실력자가 된다. 집에서는 거울을 보며 “공순이 귀엽다”고 칭찬한다. 유 감독은 “엄마는 ‘노가다’ 현장에 출근하면서도 잘 차려입고 간다. 문득 엄마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부터 취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순이’는 중년 여성을 겨냥한 영화지만 현장에선 유독 20~30대 남성들의 반응이 크다. 유 감독은 “영화를 보고 오열했다며 사인을 받으러 오는 20~30대 남성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큐 주인공 김씨는 “젊은 친구들도 노동을 통해 가족을 건사하고 돈 버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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