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천조국의 미친 스케일…월드컵 위해 9조짜리 풋볼장 뜯어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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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인근 잉글우드의 소파이 스타디움. 미국 프로스포츠 최고 럭셔리 경기장으로 불리는 이곳은 세계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와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풋볼)가 충돌하는 최전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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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이스타디움은 원래 인조잔디가 깔린 NFL 경기장이다. [AP=연합뉴스]

미국프로풋볼(NFL) LA 램스와 차저스의 홈인 이 경기장은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장으로 대대적인 ‘성형수술’ 중이다. 월드컵 개막을 약 2주 앞둔 이날, 경기장 주변엔 바리케이드가 촘촘히 쌓여 외부인 출입을 막았고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국은 다음 달 12일 이곳에서 파라과이를 상대로 북중미 월드컵 미국 측 개막전을 치른다. 소파이 스타디움이 월드컵 간판 경기장으로 낙점된 건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함 때문이다. LA의 메이저리그사커 LAFC(2만2000석) 등은 FIFA의 메인 경기장 기준(8만 석)에 한참 못 미친다. 2020년 개장한 소파이 스타디움은 최대 10만 명을 수용하며, 건설 비용만 9조원이 든 초호화 구장이다. 그라운드 중앙 37m 상공에 걸린 축구장 크기의 360도 원형 스크린(삼성전자 인피니티 스크린)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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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37m 상공의 스크린은 또 다른 명물이다. [AFP=연합뉴스]

풋볼장에서 축구장으로 변신할 때 가장 큰 장벽은 ‘필드 가로 폭’이었다. NFL 구장은 관중 몰입감을 위해 관중석을 필드에 바짝 붙여 설계한다. NFL 필드 폭은 약 49m인 반면, FIFA 국제 규격은 최소 68m에 터치라인 밖 여유 공간까지 요구한다. 결국 소파이 스타디움은 경기장 하단 코너를 둘러싸고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을 물리적으로 부수고 깎아내야 했다. NFL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1회성 축구 대회를 위해 진짜 주인인 NFL 팬들의 시야와 좌석을 훼손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경기장 곳곳에선 ‘이름 지우기’ 작업도 한창이었다. 공식 후원사 외의 상업적 노출을 금지하는 FIFA 정책에 따라 수천억원에 명명권을 산 금융기업 ‘소파이’의 로고와 구조물을 임시로 가리는 작업이다. 월드컵 기간 이 경기장의 공식 명칭은 ‘LA 스타디움’으로 바뀐다. 리모델링과 잔디 교체에 투입된 비용만 1000만 달러(약 151억원) 이상이다. 오토 베네딕트 소파이 스타디움 운영 총괄은 “워싱턴주에서 냉장 트럭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운송해 온 잔디라 최상의 품질”이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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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개막전이 열릴 이곳의 인조잔디를 천연잔디로 바꾸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이러니하게도 이 초호화 스타디움이 있는 잉글우드는 흑인과 히스패닉 노동자 계층이 모여 사는 서민 동네다. 대낮에도 넝마를 걸친 노숙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수시로 고막을 찔렀다. 우버 기사 자이언은 “이곳 사람이 아니면 낮에도 혼자 걷는 건 위험하다”며 “월드컵을 한다 해도 주민들에겐 그저 그림의 떡”이라고 꼬집었다.

월드컵 홍보물이나 축제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민 상당수는 당장 다음 달 동네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26일 기준 미국 개막전 티켓 최저가는 2155달러(약 326만원)다. 30대 흑인 남성 마일로는 “한 달 방세에 맞먹는 티켓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했다. LA 축구 열기의 진짜 주역인 히스패닉과 서민들은 경기장 밖으로 밀려나고, 경기장은 축구에 별 관심 없는 상류층의 사교 장소가 될 것이라는 현지 언론의 비판이 틀리지 않았다.

잉글우드에서만 63년을 살았다는 저메인은 이곳에 있던 NBA LA 레이커스의 홈구장(그레이트 웨스턴 포럼) 시절을 떠올리며 “그땐 큰돈이 없어도 동네 주민들이 다 함께 모여 농구를 즐겼다”고 했다. 경기장 주변을 서성이다 발길을 돌린 교포 제이 김씨는 “가격을 보고 기겁했다. 그 돈으로 가을 NFL 경기를 여러 번 보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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