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92%가 재범한다는데…소년범에 또 軍훈련 시킨다는 이 나라 [세계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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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소년범을 갱생시키겠다며 군대식 훈련 캠프를 도입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과거의 부작용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 취지와 다르게 외려 재범 위험을 높일 수 있단 우려까지 나온다.

뉴질랜드헤럴드 등에 따르면 최근 뉴질랜드 정부는 파머스턴노스에서 이같은 군대식 캠프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소년범 10명은 두 가지 이상 죄목으로 10년 이상의 징역이 확정된 14~17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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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정부가 흉악범죄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은 소년범을 갱생시키겠다며 군대식 캠프를 시범도입했다. 사진 X 캡처

뉴질랜드군이 감수한 생활 계획표에 따르면 이들은 군인처럼 오전 6시 30분에 기상해 훈련을 시작한다. 밤 9시 30분 일괄 소등해 취침하기 전까지 훈련의 연속이다. 이 외에도 운동과 공부, 직업 훈련,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문화를 배우는 등 다양한 활동이 예정돼 있다.

카렌 초어 뉴질랜드 아동부 장관은 “규칙적인 기상·취침과 정리정돈 등 규율을 지키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며 “갱생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 범죄를 15% 줄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현지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이먼 데이비스 빅토리아대 교수는 라디오뉴질랜드에 “과거에도 군대식 캠프를 운영했지만, 재범률이 줄지 않았다”며 “오히려 고통을 겪은 뒤, 스트레스를 받고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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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1980~1990년대 청소년 범죄자들의 '교정 훈련' 캠프를 운영했다. 하지만 1997년 기준 참가자 재범률이 92%에 달해 몇 년 후 폐지됐다. 사진 X 캡처

실제로 뉴질랜드에선 1980~90년대 청소년 범죄자를 대상으로 교정 캠프가 운영됐다. 하지만 97년 기준 참가자 재범률이 92%에 달해 몇 년 후 폐지됐다. 그러다가 2008년 청소년 범죄자를 훈련하는 군대식 캠프가 다시 도입됐다. 이때도 참가자의 85~87%가 2년 이내에 다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캠프서 학대 만연" 

특히 과거 청소년 교정시설이었던 와카파카리 캠프는 참가자들이 인권 침해를 고발하면서 큰 사회 문제가 됐다. 도망칠 수 없도록 섬에 설치되다 보니 '뉴질랜드판 알카트라즈(알 카포네 등 흉악범이 수용됐던 미국의 교정시설)'로 불렸다. 70년대에 시작해 2004년 문을 닫을 때까지 약 30년간 운영됐다.

“청소년 범죄자가 재판을 받은 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준법 시민으로 갱생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훈련소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와카파카리에선 참가자가 성적인 학대를 강요받는 등 폭력이 만연했다. "변기는 없고 양동이만 있는 깜깜한 독방에 3일간 갇혔다", "매일 육체노동을 했는데도 나흘에 한 번, 2분간만 샤워할 수 있었다"는 등의 학대 증언도 나왔다. 육지의 병원으로 이송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일도 벌어졌다. 참가자들 중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알코올 중독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년범 훈련 캠프의 생존자를 변호했던 아만다 힐 변호사는 원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캠프가 좋은 의도로 시작됐을지 몰라도, 실제론 학대가 빈번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인 노동당은 "과거에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위험이 있는 정책"이라며 이번 캠프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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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정부가 범죄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은 소년범을 갱생시키겠다며 최근 군대식 캠프를 시범 도입했다. 사진 원뉴스 유튜브 캡처

뉴질랜드헤럴드는 "초어 장관은 군대식 캠프 모델에 결함이 있었고 효과가 작다는 전문가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번 프로그램을 강행했다"고 전했다. 반면 초어 장관은 "현 정부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었기에 이번 캠프는 과거의 캠프와는 다르다"며 "훈련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참가자들이 지역사회로 (원활하게) 복귀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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