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밤새 긁다가 피 뚝뚝…늘어나는 '중증 아토피' 치료법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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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1층 로비에 설치된 고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부조 앞으로 어린이가 지나가고 있다. 장진영 기자

10대 A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아토피 피부염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워낙 중증이라 밤새도록 온몸을 긁곤 했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간지러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을 챙겨야 하는 엄마도 같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모자(母子)는 낮에 쓰려져 자곤 했다. 망가진 일상에 신경이 곤두선 A군은 늘 날카롭고 공격적이었다. 약을 바르려고 해도 거부하고 소리를 지르는 식이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으로 대표되는 만성질환인 중증 아토피 피부염이 소아청소년에게서 점차 늘고 있다. 안강모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추정에 따르면 이런 환자는 국내에 대략 2만~4만 명이다. 이 병은 또 천식·알레르기성 비염·우울증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안 교수는 "삶의 질이 저하되는 건 물론이고, 병원비가 많이 나오고 주변 시선에 심리적 타격도 크다"고 설명했다.

치료가 어려운 중증 아토피 피부염은 연구도 갈 길이 멀다. 국내에 얼마나 많은지, 합병증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무슨 약을 언제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게 더 많다. 유전성 희귀질환만큼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환자 수가 적고 주목도도 낮은 편이라 정부 연구비 지원 등에서 우선순위가 많이 밀렸다고 한다. 하지만 2021년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기부금 3000억원이 '게임 체인저'가 됐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 연구도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후원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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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최근 안강모 교수와 신상희 중앙대병원 교수 등이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 논문도 이 기부금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2011~2019년 아토피 피부염으로 병원을 방문한 6~20세 환자를 분석했더니 중증 중심으로 증가세가 뚜렷했다. 이 기간 중증 환자는 인구 10만 명당 20명에서 40명으로 두 배가 됐다. 전체 아토피 피부염 환자 대비 중증 비율도 0.76%에서 1.1%로 올랐다. 보습제나 항히스타민제 등을 넘어 면역억제제를 써야 하는 환자를 중증으로 분류했다.

특히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앓으면 심혈관질환·자가면역질환·악성종양 등 심각한 만성 전신질환을 동반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건강 전반에 '빨간불'이 들어온 셈이다. 안 교수는 "현재로썬 중증 아토피와 만성질환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는 추측만 가능하다. 둘의 인과관계 등은 앞으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국내 실태를 확인하는 출발점이자 추가 연구를 위한 도약판에 가깝다. 안 교수는 같은 병원 김지현교수 등과 함께 향후 한국 소아청소년만 가진 면역 기전을 확인하고, 이들에게 맞는 치료제를 빠르게 쓸 의학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목표다. 특히 특정 약효가 어느 아이에 잘 듣는지 등을 보여주는 '바이오마커'(몸속 세포·단백질·DNA 등을 통해 체내 변화를 알아내는 지표)를 확인하면 아토피 피부염뿐 아니라 다른 연관 질환에도 예방적 치료가 이뤄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분야 연구에서 한국이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꿈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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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모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병원 연구실에서 중증 아토피피부염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종훈 기자

안강모 교수는 "중증 아토피를 꾸준히 분석하면 환자들에 공통된 면역 기전이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걸 알면 약을 이것저것 써보고 어떤 게 좋은지 찾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잘 듣는 약을 택하면서 공격적으로 치료에 개입할 수 있다"면서 "발달 단계인 소아청소년기 치료에 성공하면 아이들이 향후 60년 이상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병세가 개선된 아이들은 표정부터 달라진다고 한다. 온몸에 아토피 증상이 올라오면서 사춘기인데도 긴 소매 옷만 입고 다녔던 B양은 치료가 이뤄진 뒤 외모 등에 자신감이 커졌다. 안 교수는 "상태가 좋아진 B양이 병원에 긴 바지 대신 짧은 치마를 입고 온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A군도 자신에 맞는 치료제를 찾으면서 밤에 단잠을 자는 것은 물론, 거칠었던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다.

이처럼 고통받는 아이들을 줄이고, 정상적 성장·발달을 도우려면 중증 아토피 피부염 연구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안 교수는 "이건희 회장의 뜻이 없었다면 사회적 관심서 소외됐지만 중요한 소아 질환 연구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기부금을 통한 작은 성과들이 모여서 또 다른 큰 성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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