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외규장각 의궤 전시한 ‘왕의 서고’ 문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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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새로 마련된 ‘외규장각 의궤실’. 15일부터 시민에 공개한다. [뉴스1]

낡고 해진 비단표지 한 귀퉁이에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이 책을 ‘중국 도서’로 분류했단 뜻이다. 실제로는 조선 왕실이 중요 행사를 치른 뒤 관련된 의례기록을 모아 만든 책, 의궤다. 정조(재위 1776~1800)의 명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외규장각에 보관하던 중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갔다. 한국에 돌아온 건 2011년, 외규장각을 떠난 지 145년 만이었다.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총 297책)를 상시 만날 수 있는 전용공간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을 연다. 상설전시실 2층 서화관 내 마련된 ‘외규장각 의궤실’이다. 약 59평(195㎡) 규모로 조성된 전시실은 강화도를 떠난 지 158년 만에 확보한 ‘의궤 전용 공간’이다.

14일 먼저 둘러본 전시실은 입구에 마치 설치미술처럼 층층이 연출한 의궤 표지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군데군데 그을리고 훼손된 흔적이 역사의 상처처럼 느껴진다.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며 우리 문화재를 찾기 시작한 박병선 박사(1923~2011)가 1975년 베르사유의 국립도서관 분관 고문서 파손도서보관소에서 의궤를 발견했다. 당시 의궤 각각의 비단 표지는 이렇게 해져 있었다. 프랑스 측은 새로운 비단으로 장황(책·화첩 따위를 둘러 꾸미는 일)하고 헌 표지들은 보관했다가 2011년 의궤 반환 때 함께 돌려보냈다. 영구반환은 아니고 정부 간 협약에 따라 5년마다 갱신하는 대여 방식이다. 의궤실 설계를 담당한 이화여대 김현대 교수는 입구를 이 헌 표지의 복제품으로 장식했다.

전시실은 크지 않지만 외규장각 의궤에 얽힌 사연과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서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게 배치했다. 실제 외규장각 내부와 비슷하게 기둥과 문살을 설치한 ‘왕의 서고’에선 왕이 보던 어람(御覽)용 의궤와 단 한부씩 전해지는 유일본 의궤를 각 한 권씩 만날 수 있다. 이를 포함해 의궤실에선 한번에 8책씩, 1년에 4차례 교체해 연간 32책을 공개한다.

무엇보다 한자로 된 원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디지털 책’이 두드러진다. 책장을 넘기면 의궤에 실린 내용이 한글과 영문으로 번역돼 나온다. 다양한 그림과 영상으로도 체험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김재홍 관장은 “의궤 환수 후 두 차례 특별전을 했고 총 7권의 학술총서가 나와 이번 전시의 밑거름이 됐다”면서 “전용 전시실을 통해 우리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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