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입맛에 딱…석유기업 옹호론자 '美에너지 차르' 됐다 […
-
1회 연결
본문
버검은 미국의 에너지를 다시 지배적이고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더그 버검(68) 노스다코타 주지사를 국가에너지회의(NEC) 의장과 내무장관에 지명하면서 한 말이다. NEC는 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총괄·조율하는 기구다. 워싱턴포스트(WP)는 “버검이 ‘에너지 차르’에 임명됐다”고 전했다.
바이든에 맞서 셰일 가스 사업 적극 지원
트럼프의 버검 기용은 예상된 일이었다. 버검이 재임한 노스다코타는 미국 내 최대 셰일가스 유전지다. 버검은 노스다코타에서 활동하는 석유 시추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지난해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계획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서한을 공화당 주지사 18명과 함께 백악관에 보냈다. ‘화석연료 경제’ 구현을 내세워 온 트럼프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을 ‘신종 녹색 사기’로 규정하고, ‘액체 황금’인 석유 채굴을 늘려 에너지와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관련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약해 왔다.
버검이 내무장관 자리를 겸하는 것도 트럼프의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내무부는 미국의 국유·공유지, 국립공원, 야생 동물 보호구역 등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토지를 담당한다. 석유 및 가스 시추, 풍력 및 태양광 발전 관련 부지를 임대하는 업무도 내무부 소관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버검의 내무장관 임명을 통해) 연방 정부 소유의 땅과 바다를 석유와 가스 시추 사업에 개방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버검은 트럼프에 실질적인 도움도 줬다. 트럼프 선거캠프의 에너지 고문이었던 버검은 트럼프에 거액을 기부한 석유 기업 임원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미국 최대 석유·가스 회사 중 하나인 ‘콘티넨털 리소스즈’ 창업자 해럴드 햄과 매우 가깝다. 햄은 지난해 트럼프 캠프에 500만 달러(약 69억9500만원)를 기부했다. 트럼프가 선거 기간 동안 “(버검은) 내가 아는 누구보다 에너지에 대해 많이 안다”고 치켜세웠던 것엔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
아버지 유산 담보로 사업…억만장자 반열
버검 자신도 거부(巨富)다. 그는 억만장자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재산 규모가 약 15억 달러(약 2조940억원)로 알려져 있다. 2001년 자신이 운영하던 회계 소프트웨어 기업 그레이트 플레인스 소프트웨어(GPS)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11억 달러에 매각한 것이 바탕이 됐다. GPS는 버검이 27살이던 1983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160에이커(약 65만㎡) 짜리 농장을 담보로 25만 달러(약 3억4000만원) 대출을 받아 세운 회사다. 이후 10여년 만인 1997년 노스다코타주 기반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버검은 GPS 매각 이후 2007년까지 MS 부사장을 지냈다. 특히 기업용 소프트웨어 ‘엔터프라이즈’를 MS의 주요 사업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에겐 “버검은 MS의 영혼을 찾을 수 있도록 영감을 줬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MS 퇴사 이후엔 부동산 개발회사 ‘킬번그룹’, 고향의 이름을 딴 벤처캐피털 ‘아서벤처스’ 등을 설립해 재산을 모았다.
트럼프, 풍성한 머리숱·자금 모금 능력 높이 사
버검은 이러한 자수성가 스토리를 디딤돌 삼아 정계에 진출한다.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채로 2016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낙승한 뒤 4년 뒤에도 무난히 재선했다. 지난해 6월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뒤 6개월만에 사퇴하고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열성 트럼프 지지자로 변신해 트럼프와 급속히 가까워졌다. 지난 3월 트럼프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버검은 부부 동반 브런치 모임을 가졌다. 5월엔 트럼프가 ‘성추문 입막음’ 혐의로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 출석했을 당시 법원 밖에서 트럼프 지지자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트럼프는 버검의 선거 자금 모금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버검은 자신을 후원하는 억만장자 기술 투자자 톰 시벨, 스탠퍼드 경영대학원(MBA) 동창이자 버거킹 전 회장인 딕 보이스 등을 앞세워 트럼프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버검의 외모를 트럼프가 좋아한다는 보도도 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버검의 풍성한 머리숱에 대해 칭찬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도 될 뻔했다. NBC방송은 트럼프는 당초 부통령 후보로 버검을 지목할 생각이었지만, 아들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이 JD 밴스를 지지하며 밀렸다고 전했다.
한달 전 방한해 尹 만나
버검은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버검은 해럴드 햄과 함께 트럼프 정권인수팀에서 에너지 정책팀을 이끌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4일 이 팀이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50만원)를 세액공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폐기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IRA에 근거해 미국 내에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인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에 막대한 타격이 될 수 있다.
버검은 지난달 16일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 버검은 “한국과의 협력 강화를 최우선 관심사항에 두고 있다”며 “에너지·농업·항공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윤 대통령도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측과 친분이 있는 인사 중 하나로 버검을 꼽았다.
☞더그 버검(Doug Burgum)
1956년 미국 노스다코타주 작은 마을 아서에서 태어났다. 노스다코타주립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유년시절 목동과 굴뚝 청소부 등으로 일했다. 스탠퍼드 MBA 진학 당시 이런 배경이 입학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스탠퍼드에서 훗날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스티브 발머와 동문수학하며 수업 과제를 함께 만들었다. 인종, 성(性) 정체성 등을 둘러싼 ‘문화전쟁’ 의제에선 강경 보수다. 지난 4월 임신 6주 차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주 법안에 서명했다.
댓글목록 0